국민연금, 구현모 연임에 반대표 행사 입장···민영화된 공기업에 尹정권 영향력
2018년 문재인 정권 당시 IBK기업은행의 KT&G 대표 연임 반대와 유사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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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이승용 기자] KT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KT 차기 대표 단독후보로 확정된 구현모 KT 대표에 대해 반대표 행사 의사를 밝힘으로써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구 대표 연임을 둘러싼 표 대결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를 놓고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 당시 IBK기업은행이 KT&G 경영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당시 행태와 비슷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KT도 KT&G처럼 민영화된 공기업이지만 그동안 역대 정권마다 낙하산 인사를 꽂으려는 외부 압력에 시달리면서 ‘무늬만 민영화’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KT&G는 2018년 3월 주주총회에서 외국인 주주들의 지지에 힘입어 백복인 대표가 연임에 성공하면서 진정한 민영화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 대표 역시 내년 3월 KT 주주총회에서 백 대표처럼 연임에 성공한다면 KT 민영화에 대한 시선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 국민연금-구현모 표대결, 2018년 KT&G ‘데자뷰’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날 국민연금이 구현모 KT 대표의 연임에 대해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을 놓고 지난 2018년 3월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이 KT&G 백복인 대표 연임을 막으려고 주주권을 행사했던 당시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날 KT 이사회 산하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는 구 대표를 차기 대표이사 단독후보로 추대했다. 구 대표 연임 안건이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통과되면 구 대표의 연임은 확정된다.

하지만 전날 저녁 KT 최대주주(지분율 10.35%)인 국민연금은 반대 입장을 공식화했다.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은 “"KT 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했다”며 “앞으로 의결권 행사 등 수탁자 책임활동 이행과정에서 이러한 사항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공식화한 셈이다.

이와 비슷한 일은 지난 2018년 3월 KT&G에서도 있었다. 2018년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KT&G 2대 주주였던 IBK기업은행(6.93%)은 백복인 대표의 연임에 대해 “사장 후보 결정 과정이 불공정하다”며 반대의사를 밝히고 반대표를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주주제안을 통해 사외이사 정원을 6명에서 8명으로 늘리고 오철호 숭실대학교 행정학부 교수, 황덕희 법무법인 서울 변호사 등 2인을 KT&G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KT와 KT&G 모두 과거 공기업이었으나 민영화한 기업이다. KT는 1981년 한국전기통신공사로 설립된 이후 2002년 민영화됐고 KT&G는 한국담배인삼공사가 2002년 민영화되면서 사명을 바꾸었다.

KT와 KT&G는 민영화했지만 정권교체시마다 낙하산 인사들이 군침을 흘리는 자리였다. 구현모 대표와 백복인 대표는 모두 공채출신으로 전문경영인에 오른 사상 최초 CEO다. 첫 공채출신 CEO의 연임에 정권이 반대표를 행사한다는 점에서 이번 KT 사태와 2018년 KT&G는 매우 흡사하다.

두 대표 모두 첫 번째 임기 당시 사법리스크를 겪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백 대표는 광고대행사로부터 수주 청탁과 함께 수천만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넘겨졌으나 무죄판결이 확정됐고 백 대표가 본부장 시절인 2011년 인도네시아 담배회사 ‘트리삭티’를 1534억원에 인수한 것과 관련해서도 분식회계 의혹을 받았으나 결국 검찰과 금융감독원 모두 무혐의로 결론냈다.

구 대표 역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여야 국회의원 99명에게 '쪼개기 후원'을 한 혐의로 벌금 15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으나 이후 정식재판을 청구,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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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슷하면서도 다르다?···행동대장 나선 국민연금

2018년 KT&G와 이번 KT 표대결은 비슷하면서도 다소 다른 점도 존재한다.

백복인 대표 연임에 반대하면서 ‘행동대장’ 역할을 맡았던 정부 측 주주는 IBK기업은행이었다. 하지만 이번 구현모 대표 연임에 반대하는 정부 측 행동대장은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2018년 3월 KT&G 주주총회에서 최대주주로 지분 9.1%를 가지고 있었지만 IBK기업은행 편을 들지 않고 ‘중립’ 의견을 내면서 사실상 기권표를 행사했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기권하면서 백 대표의 연임은 한결 수월해졌다. 외국인들의 지지 속에 주주총회 참석주식 수 9328만7928주 중 76.26%인 7114만2223주가 백 대표 연임에 찬성표를 던졌다. IBK기업은행에 상정한 사외이사 수 증원 및 추천안건도 부결됐다.

당시 국민연금 의결권전문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사장선임과 관련해 제기되는 의혹(분식회계 등)에 따른 기업가치 훼손을 우려하면서 반대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의결권 지침에 따른 객관적 사실로서 확정되지 않은 점(판결, 검찰 기소 등 국가기관 판단) 등 제반 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중립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를 놓고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이 백 대표 연임에 찬성 의견을 냈기에 국민연금이 IBK기업은행 손을 들어주기가 곤란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사건에서 문형표 국민연금 이사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기소되고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국민연금이 백 대표 연임에 반대할 경우 정권의 정체성과 모순되는 행보로 보여질까봐 부담을 가졌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구 대표가 백 대표와 달리 연임을 앞두고 국내 기업과 지분교환을 통해 우군을 미리 확보했다는 점도 다르다.

KT는 올해 1월 신한은행과 4375억원 규모의 지분 교환을 실시했고 신한은행은 현재 5.58%의 KT 지분을 가지고 있다. KT는 올해 9월 현대차그룹과도 7500억원 규모의 지분을 교환했다. 이를 통해 현대차 4.69%, 현대모비스 3.1% 등 현대차그룹은 7.79%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신한은행의 우호지분을 합치면 13.37%로 국민연금(10.35%)을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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