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건설사 중 6곳 최대 실적
내년부터 미분양 리스크 본격화
“시장 침체 장기화 시 독 될 수도”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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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올해 도시정비사업에서 대형 건설사들이 잇따라 수주 신기록을 기록하는 등 여느 때보다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에 놓였다.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으로 인한 부동산 한파로 인해 건설업황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미분양 리스크 등 시장 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수주 호황이 자칫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대건설 9조·GS건설 7조 달성···대우·DL·포스코, 최고 실적 갈아치워

2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내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 중 6곳이 도시정비사업 분야에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현대건설은 사상 첫 ‘10조 클럽’ 진입을 눈앞에 두며 1위를 일찌감치 예약한 상태다. GS건설 역시 수주액 7조원을 돌파하며 2위에 안착했다. 대우건설과 DL이앤씨, 포스코건설 등도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현대건설은 올 초부터 지금까지 신규 누적 수주액 9조3395억원을 달성하며 도시정비사업 분야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이엔드 브랜드인 ‘디에이치’(THE H)를 내세워 14곳에서 정비사업을 수주했다. 사업별로는 재개발이 8건으로 가장 많았고 리모델링 4건, 재건축 1건, 가로주택정비사업 1건 등을 기록했다.

2위 GS건설은 올해 7조1292억원어치 수주고를 올렸다. 지난 2015년 8조100억원을 기록한 이후 7년 만에 수주액 7조원을 돌파한 것이다. 올해 신규 수주 14조620억원으로 목표액으로 잡았는데 그 중 절반을 도시정비사업 수주로 채우게 됐다. 눈에 띄는 점은 도시정비사업 수주 18건(재건축 8건·재개발 7건·리모델링 2건) 중 10건이 서울 사업장이라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선별 수주가 중요해진 상황에서 서울 사업장이 많다는 점은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3~5위는 대우건설, DL이앤씨, 포스코건설 3개 건설사가 접전을 펼쳤다. 대우건설은 하반기 정비사업 재개발 최대어로 꼽힌 ‘한남2구역’ 수주전에서 승리하는 등 막판 기세를 올렸다. 올 초부터 지금까지 5조2763억원어치 일감을 따내며 지난해 실적(3조8992억원)을 넘어섰다. 창사 이래 최대 수주 기록이다.

대우건설 뒤를 쫓고 있는 DL이앤씨는 지난달 1조6073억원 규모 부산 촉진3구역 재개발 사업을 단독으로 따내는 등 공격적인 수주 활동으로 신규 누적 수주액 4조8943억원을 기록했다. 앞서 최고 기록인 2016년 3조3848억원을 6년 만에 갈아 치운 것이다. 포스코건설도 4조5892억원어치 수주고를 올리며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특히 전체 수주의 66%(3조111억원)를 리모델링 분양에서 확보해 리모델링 강자다운 면모를 보였다.

롯데건설도 올해 4조2620억원을 수주하며 최대 기록을 세웠다. 서울에서만 2조3270억원을 기록하며 종전 최대 수주였던 지난해 2조2229억원을 넘어섰다. SK에코플랜트는 1조5207억원을 수주하며 최고 기록(2015년 1조2945억원)을 갱신했다. 이밖에 ▲현대엔지니어링 2조1647억원 ▲삼성물산 1조6919억원 ▲SK에코플랜트 1조5207억원 ▲HDC현대산업개발 1조307억원 등을 기록했다.

◇주택시장 침체 장기화 예상…“수주 물량 처리 곤란할 수도”

다만 건설업계에선 도시정비사업의 수주 호황을 두고 지나친 낙관론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주택시장 침체의 장기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무리한 수주가 나중에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대형 건설사 가릴 것 없이 최근 몇 년 간 정비사업 호황 때 수주해 놓은 물량을 털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주택경기의 불황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미분양 위험이 내년부터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15일 배포한 내년 산업전망에서 건설업에 대해 “미분양 위험은 이제부터”라고 진단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금리 인상으로 자금조달 환경이 위축되며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미분양 주택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내년 하반기부터 매출 감소가 본격화될 것으로 봤다. 내년 상반기를 지나며 금리 인상 추세가 완화하더라도 원자재, 인건비, 물류비 등 원가부담을 소비자에게 전이시키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올해 들어 미분양 물량은 가파르게 늘고 있는 추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4만7217가구로 작년 동기(1만4075가구) 대비 3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업계에서는 전국 분양 물량의 10%가 넘는 5만 가구를 미분양 위험수위로 판단하는데 이 속도라면 조만간 미분양 5만 가구를 돌파할 전망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아파트 분양이 잘되면 문제가 없지만 시장 상황이 악화돼 미분양·미입주 물량이 쌓이면서 공사 미수금이 발생하고 시행사마저 넘어지면 결국 건설사가 덤터기를 쓰게 된다”며 “분양 사업은 계획 단계와 분양 시점, 입주 시점에 따라 주변 시세가 다 달라지기 때문에 미분양이 발생할 수도 있고 추후 할인 분양을 할 경우 처음에는 예상치 못한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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