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자보호법 개정안 발의···“경제 여건 맞춰 지급한도 조정해야”
10월 한달간 정기 예·적금 잔액 45.9조원 급증
“경제 규모 커진 만큼 예금자보호 한도 상향 필요”
[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올해 하반기 들어 금융권의 수신금리가 급등하면서 시중자금이 정기 예·적금으로 대거 쏠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기존 5000만원으로 설정된 예금자보호 한도를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15일 국회에 따르면 정무위원회 소속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예금자보험금의 한도를 경제적 여건의 변화에 맞춰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예금자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예금보험제도는 금융기관이 파산 등의 사유로 예금 등을 지급할 수 없는 경우 예금보험공사가 해당 금융기관을 대신해 예금자에게 일정 한도까지의 예금 지급을 보장함으로써 예금자를 보호하고 대규모 인출 사태를 방지해 금융제도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다.
해당 개정안은 예금보험공사가 5년마다 예금보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보험금의 지급 한도를 조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예금자보호법이 시행된 2001년 예금자보호 한도는 원금과 이자를 합해 5000만원으로 규정됐다.
그러나 예금자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국내 경제 규모가 크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급 한도는 20년 넘게 5000만원으로 유지되고 있어 금융권 안팎으로 현행 예금자보호 한도가 경제적 여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지난 2021년 1만1563달러에서 지난해 3만4984달러로 3배 이상 급증했다.
금융당국 차원에서도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다. 앞서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는 지난 4월 예금자보호 한도의 적정 수준 및 금융사별 예금보험료 비율 검토를 위한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관련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 각 업권별 의견 수렴을 통해 내년 8월까지는 구체적인 개선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금융소비자단체에서는 예금자보호 한도 상향을 반기는 분위기다. 소득 수준 향상과 함께 최근 금리 인상으로 예적금 규모가 크게 늘어난 만큼 이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0월 한 달간 정기 예·적금은 45조9000억원 증가했다. 이는 2001년 12월 통계를 집계한 이래 10월 증가폭 중 가장 큰 수준이다. 10월 금융권 수신금리 인상 경쟁이 활발해지면서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정기 예·적금으로 자금이 쏠린 결과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예금자보호법이 시행되기 시작했을 때보다 국민들의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예금 고객이 금융사에 예치해두는 자산도 크게 늘었다”며 “금융소비자들의 피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예금자보호 한도 상향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예금자보호 한도를 증액할 경우 금융사들이 늘어난 예금보험료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있어 우려된다”며 “늘어난 비용을 대출 금리를 높이는 등의 방식으로 고객에게 떠넘기면 금융소비자 보호의 의미가 퇴색된다”고 지적했다.
은행권에서도 금융권 전반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예금자보호 한도 상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 저축은행 사태가 발생했을 당시에도 예금자 보호가 되는 5000만원 한도 이상으로 예금한 고객들이 피해를 많이 봤다”며 “제2금융권에서 문제가 터지면 그 여파가 제1금융권에도 번질 수 있기 때문에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적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성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예금자 보호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어 “은행은 예금액 대비 지출하는 예금보험료 비율이 0.08% 수준이기 때문에 은행의 수익성을 고려하면 예금자보호 한도가 상향된다고 해도 부담은 미미하다”며 “경제 규모가 커진 만큼 예금자보호 한도가 상향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