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전환률, 법적 상한 훌쩍
위반 해도 처벌 없어···실효성 논란도
“고금리 장기화에 주거 불안정 더 커질 듯”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최근 전세금을 월세로 낼 때 적용하는 이자율을 의미하는 ‘전월세 전환율’이 법정 기준보다 높아져 세입자들의 주거 부담이 커지는 모양새다. 전월세 전가율이 높아진 건 집주인이 고금리 여파에 늘어난 비용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앞으로 고금리 상황이 길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만큼 임차인의 주거 불안정과 비용 부담을 덜어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주택의 전월세 전환율은 지난 9월 기준 5.8%를 기록했다. 정부는 전세 형태의 보증금을 월세로 바꿀 때 한국은행 기준금리(7일 기준 3.25%)에 2%를 더한 수치를 넘지 못하도록 전월세 전환율을 정해놓고 있다. 2020년 세입자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로 마련했다. 하지만 최근 전월세 전환율은 인상된 기준금리를 적용해도 상한이 5.25%으로 법적 상한을 훌쩍 넘긴 것이다.
전월세 전환율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편차가 컸다. 서울(4.9%)을 포함한 수도권은 5.5%로 전국 평균보다 낮게 나타났다. 반면 경기도를 제외한 8개도는 전월세 전환율이 7.1%에 달했다. 지방(6.6%)과 5대 광역시(6%)도 6%를 넘겼다.
특히 충북의 빌라(연립·다세대) 전월세 전환율은 9.9%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충남(9%)과 경북(8.3%), 전북(8.2%) 등이 뒤를 이었다. 전월세 전환율이 오르면 동일한 임대보증금에도 월세 가격은 상승한다. 세입자들은 높은 대출 이자를 피해 월세를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월세 비용 상승이라는 또 다른 부담을 떠안게 되는 셈이다.
전월세 전환율 규제가 유명무실해진 건 기존 계약을 갱신할 때만 규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새 계약엔 적용되지 않아 강제성이 없다. 이에 따라 임대인은 법적 상한을 지킬 의무를 느끼지 못하는 데다 세입자 입장에서도 전세 계약을 포기할 각오를 하고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심의·조정을 신청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항변할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집주인이 법정 전월세 전환율을 지키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임차인에게 과도한 월세를 요구하는 임대인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개정안은 국회에서 2년째 계류 중이다. 이러다 보니 전세의 월세 전환을 막으려던 규제 취지도 사라졌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30일 발표한 ‘2022년 1~10월 누계 주택통계’에 따르면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51.8%로 1년 전보다 8.7% 포인트 증가했다.
업계에선 임대인이 고금리 여파에 늘어난 비용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해 전월세 전환율이 높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장에선 정부의 전월세 전환율을 적용하는 것보다는 이자율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실상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전월세 시장 안정화를 위해 ‘안심전환대출’과 ‘청년전용 보증부월세(보증금을 낀 월세 대출)’ 등을 출시했지만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안심전환 대출은 전세 대출 상품이 제외돼 전세입자들의 이자 부담이 여전한 실정이다. 청년 전용 보증부월세 대출도 자격 요건이 까다로워 지난해 실행 건수 8회에 그쳤다.
앞으로 고금리 상황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임차인의 주거 불안정과 비용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전월세 전환율을 잡는 데 실패하면서 세입자의 주거 불안정과 부담은 더 커졌다”며 “주요국 통화 긴축에 따른 고금리 상황이 길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