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시중은행 중도상환수수료 한시적 면제 추진
예금금리 인상 자제령 이어 대출금리도 인상 자제 압박
은행권 “양립 불가능한 요구사항 많아···개입 과도한 측면 있어”
[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은행권을 향한 금융당국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다. 은행의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인상에 제동을 거는가 하면 최근에는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논의까지 추진하면서다.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취지에는 공감한다는 의견이지만 금리를 넘어 수수료까지 전방위적 개입이 이어지면서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다.
6일 금융권과 국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과 당정 협의에서 저신용자 등 취약차주에 대한 중도상환수수료를 최대 1년 정도 면제하는 ‘은행권 대출 중도상환수수료 한시적 면제 추진’ 방안을 보고했다.
지원대상 차주는 신용등급 하위 30%, 코리아크레딧뷰로(KCB) 7등급 이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전 채무조정(프리워크아웃) 적용 차주 등이 유력하며, 최종 적용 대상은 각 은행별로 추가적인 검토를 거쳐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논의는 정치권에서 시작됐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주택담보대출, 전세대출, 신용대출의 금리가 연 8%를 목전에 두고 있다”며 “은행권도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안심전환대출처럼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도상환수수료는 차주가 약정과 달리 만기가 도래하기 전 대출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을 경우 지불하는 일종의 위약금이다. 은행들은 대출 만기를 고려해 자금을 운용하는데 차주가 대출을 조기 상환할 경우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을 통해 얻는 이자 수익이 줄어들고 자금 운용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때문에 중도상환액의 최대 1.5%를 수수료로 부과한다.
이를 두고 은행들은 난색을 보이고 있다. 중도상환수수료 문제 외에도 금리 결정에 개입하는 등 최근 은행권을 향한 금융당국의 입김이 날로 거세지고 있는 탓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은행에 예금금리 인상 자제령을 내린 데 이어 최근에는 대출금리 인하 압박도 본격화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의 대출금리 상승 추이를 매주 살피며 실태 점검을 준비 중이다.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가계의 이자부담이 커지자 예금에 이어 대출에 대해서도 금리 인하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당국이 지난달 은행권에 직접적으로 수신금리 인상 자제를 요구한 이후 은행권의 예금금리는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달 13일 1년 만기 기준 연 5.18%로 금리가 오르며 시중은행 정기예금 중 가장 먼저 연 5% 금리를 돌파했던 우리은행의 ‘WON플러스예금’ 금리는 이날 기준 연 4.98%을 기록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금리 인상 자제 당부에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금리를 하향 조정한 것이다. KB국민은행의 ‘KB Star 정기예금’도 지난달까지만 해도 1년 만기 기준 최고 연 5.01% 금리를 나타냈으나 현재 최고 연 4.81%로 떨어진 상태다.
금리나 수수료 문제 등 금융당국의 은행의 가격 결정 기능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은행들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지원이 필요할 때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동참을 요구하는 일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번처럼 전반적으로 요구사항이 많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며 “은행채 발행과 예금금리 인상을 자제하라고 하면서 자금 확보가 어려워졌는데 이런 와중에 기업대출 등 금융지원은 지속하라고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리나 수수료는 은행들이 시장 상황과 영업전략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사항인데 금융당국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건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전방위적인 개입이 너무 많고 양립 불가능한 요구들이 계속되고 있어 난감하다”고 덧붙였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장안정 및 서민금융지원을 위한 당국의 정책 방향에는 일정 공감한다”면서도 “시장공급과 자금조달의 장기적인 관점에서 은행권의 유연함을 풀어줄 수 있는 정책도 수반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