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저축은행, 8%대 파격 이율 제시
퇴직연금 비중 큰 곳 유동성 위기 올수도
"높은 이율 보장하면 역마진 우려도 커"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금융사들의 퇴직연금 고객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소형 보험사들의 충격이 더 클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당장 다음달 만기가 도래하는 퇴직연금이 증권사, 저축은행 등으로 대거 이동한다면 퇴직연금 비중이 높은 중·소형 보험사들은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보험사들은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퇴직연금 고객 이탈은 유동성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단 지적이 제기된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보험사들을 비롯한 금융사 90곳은 다음달 적용할 퇴직연금 원리금보장형 상품 이율을 일제히 공시했다. 금융당국이 일부 금융사가 다른 금융사의 공시이율을 본 후 이율을 더 올리는 '커닝 공시'를 차단하기 위해 내린 조치다. 최근 시중금리가 크게 오르면서 금융사 간 이율 경쟁이 격화되자 이를 막기 위해 결정한 방안이다. 

공시 결과 중·소형 보험사들의 타격이 클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증권사들이 파격적인 이율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수익률 높은 곳으로 고객이 이탈하는 ‘머니무브’ 현상이 심화되면 대형사보단 중·소형사가 더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증권업계는 1년짜리 확정급여형(DB)형 이율보증형보험 상품 이율을 평균 6%로 제시했다. 더구나 일부 증권사와 저축은행들은 7~8%대의 이율을 내걸었다. 반면 보험업계는 5%대를 유지했다. 

보험업계에선 중·소형 보험사 가운데 퇴직연금 비중이 높은 롯데손해보험, 푸본현대생명, IBK연금보험 등의 충격이 더 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퇴직연금 고객이 대거 이탈하면 당장 돌려줘야 하는 금액에 대한 부담이 다른 보험사들보다 크기 때문이다. 롯데손보는 올해 6월 말 기준 총 부채 가운데 퇴직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52%로 업계에서 가장 높다. 푸본현대(49%)와 IBK연금보험(32%)가 뒤를 이었다. 세 곳 모두 총 자산 20조 이하의 중소형 보험사다. 

/자료=각 사(2022년 6월 말 기준),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더구나 롯데손보와 IBK연금보험은 이율 경쟁력이 떨어지기에 더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롯데손보와 IBK연금보험이 공시한 1년 만기 DB형 이율보증형보험 이율은 각각 5.11%, 5.6%다. 보험업권에서도 낮은 수준이다. 이보다 낮은 이율을 제시한 곳은 삼성생명(3.56%), 한화생명(4.7%), 삼성화재(5.15%), DB손해보험(5.36%) 등 대형사를 제외하고선 거의 없다. 

최근 보험사의 유동성 위기를 더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히는 부분은 퇴직연금 사업이다. 올해 들어 보험사,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은 치솟는 금리로 인해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형 시중은행이 5%대의 예금금리 상품을 내놓으면서 시중의 자금을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자금을 모으기 어렵다 보니 보험사들은 기존 자산으로 보유하던 채권을 시장에 대거 내다 팔았다. 생보사의 경우 ‘역마진’ 우려를 무릎쓰고 연 5%가 넘는 이율을 보증하는 저축성상품도 출시했다. 여기에 약 30조원의 퇴직연금이 올해 말에 만기가 돌아와 보험사들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푸본현대생명, 롯데손보, IBK연금보험 등은 회사의 외형에 비해 퇴직연금 운용 비중이 높아 퇴직연금이 대규모로 유출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에 대한 대응 부담이 클 것”이라며 “자금 이탈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현금 확보 등 유동성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진단했다. 

중소형 보험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이 퇴직연금 이율 경쟁을 벌이지 말라고 계속 경고를 해 이를 따랐는데, 결과적으론 시장의 우려를 키우게 됐다는 것이다. 더구나 다음 달 만기가 돌아오는 1년짜리 상품 외에도 다른 상품들도 많은데 유동성 위기를 우려하는 것은 다소 지나친 판단이라는 설명이다. 

더불어 당장은 일부 고객이 이탈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높은 이율을 제시하지 않는 것이 회사에 이득이란 시각도 있다.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하게 높은 이율을 보장했다가 내년에 실제로 운영한 수익률이 이에 미치지 못하면 역마진 규모만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금리가 크게 올랐지만 내년 거시경제 상황은 어떨지 아무도 알 수 없다”라며 “고객 이탈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무리하게 이율을 높게 잡으면 그만큼 손해볼 가능성도 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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