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추진 CRMA 내년초 초안 공개···EU, 공식적으론 지리적 차별 없단 입장
독일·프랑스 등 움직임 주시 필요···CRMA 내 환경 부분도 기업 부담 관측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유럽연합(EU)이 추진하는 핵심원자재법(CRMA)이 유럽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흘러갈 수 있단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는 EU가 자유무역을 강조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배타적, 차별적 요소가 포함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 전문가들은 EU 기조와 개별국가 움직임이 다를 수 있단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CRMA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 환경 부분도 유럽에 진출한 국내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단 진단도 나온다.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 EU는 공급망 다변화와 역내 생산 강화 등을 위한 CRMA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CRMA는 현재 법안 초안 마련 단계로 아직 구체적인 윤곽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중요 광물 원자재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상황을 감안해 원자재에 있어 핵심 전략 목록을 선정하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며 역내 생산을 강화하기 위한 내용이 담길 것이란 전망이다.
이를 두고 유럽산 광물 비율이 낮은 공산품에 대한 추가 관세 및 보조금 철회 등 CRMA가 미국 IRA와 비슷한 방향으로 다듬어지는 게 아니냔 우려가 제기된다.
일단, 정부는 EU가 세계무역기구 등 다자 통상 규범 준수를 강조하고 있고 역내 입법 절차가 투명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무역에 있어 차별적 요소가 포함된 조치가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실제 EU 측도 공식적으로는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식의 지리적 차별은 없을 것이란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EU 내 모든 개별 국가가 같은 목소리를 내는 건 아니란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김경화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EU의 경우 내국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다자적 규범을 중시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EU 안에서도 각국이 발전된 산업 분야가 다르다보니 EU 내 국가간에도 이해충돌이 많아 의견 조율이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CRMA가 어떤식으로 만들어질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유럽 내 일방주의적인 입법 움직임이 있는 부분도 있다”며 “개별국가별로 자국의 경쟁력 강화, 공정 경쟁 환경 조성을 위한 보조금 규정 입법 움직임이 있고, 다른나라의 경제적 위협에 대응해 일방적 보복조치를 할 수 있는 법규도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성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KIEP 주최 국제세미나에서 만난 EU 관계자들은 일단 (CRMA에) 지리적 차별은 없을 것이라고 얘기했다”며 “다만, EU 내에서도 독일과 프랑스 내에서는 기존 EU의 포용적인 정책기조와는 다른 목소리도 있다”고 말했다. EU 전체 생존 차원에서 IRA와 같은 보조금 지급이 필요하단 의견도 있지만 이는 EU 전체 차원의 목소리는 아니란 설명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CRMA에 지리적 차별 요소가 들어갈지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더해 EU와 미국이 비슷한 정책 기조를 가져가는지도 관심있게 봐야할 지점이다.
조 위원은 “미국이 IRA라는 강공모드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면 EU도 미국처럼 움직여줘야 한다”며 “EU가 미국가 다르게 포용적 입장으로 간다면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운신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EU의 법안 초안에 지리적 차별에 관련된 내용이 포함된다면 최종안이 유럽의회에서 표결되기 전에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문제제기를 해야한다. 차별적인 법안이 나오면 결국 우리의 공급망이 튼튼하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란 점을 인식해 우리 기업이 대응을 잘하도록 지원해야 한단 설명이다.
우리나라와 유럽의 제조업 연관성에 주목해야 한단 조언이다. 조 위원은 “우리나라와 현재 EU 공급망이 긴밀하게 연관된 국가들은 중부 유럽쪽에 있다”며 “헝가리나 폴란드 등은 외국기업에 친화적인 규제 환경을 갖춰 현재 포스코와 같은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다”고 말했다. 우리 기업들이 EU를 공급망 체인의 허브로 잘 활용해 왔기에 정책적 기조 변화로 피해받는 부분을 잘 살펴야 한단 지적이다.
CRMA를 바라보는 관점이 IRA와 관련된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CRMA에 담길 것으로 보이는 환경 부분이 우리 기업에 미칠 영향도 대비해야 한단 조언이 나온다.
김문태 대한상공회의소 팀장은 “기업들이 제일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일정 비중을 규정하는 것이다. 다만, EU가 워낙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관련 규제도 많다보니 재활용 핵심 광물이나 원재료 재활용에 대한 규제 움직임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첨단 산업에 들어가는 원재료의 재활용이 짧은 시간에 긴박하게 이뤄지면 연착륙할 시간이 부족해 기업들이 현실적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시장 효율성, 최적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급망이나 수입선을 정하는데 경제안보전쟁이나 기술패권 경쟁 때문에 기업의 선택이 무색해지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U는 지난 25일까지 관련업계 및 이해 당사자들로부터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했다. 이후 입법 영향 평가를 거쳐 내년 1분기 내 CRMA 초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