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은행채 순발행액 –4조1700억원···마이너스 전환
은행채 발행 이어 수신금리 경쟁도 자제령
“핵심 자금조달 수단 모두 막혀···유동성 지표 악화 불가피”
[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최근 금융당국의 자제령으로 시중은행들이 은행채 발행과 수신상품 금리 인상에 제동이 걸리면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은행의 주요 자금조달 수단이 모두 막히면서 은행권에서는 유동성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이날까지 은행채 발행액은 13조3800억원, 상환액은 17조5500억원으로 상환액이 발행액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순발행액은 마이너스(-) 4조1700억원 수준이었다.
지난 9월까지만 해도 한 달간 은행채 순발행액은 7조4600억원이었다. 발행액은 25조8800억원에 달했으며 상환액은 18조4200억원으로 발행액이 상환액을 웃돌았다. 그러나 두 달 만에 발행액이 10조원 이상 줄어들면서 순발행액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은행채 순발행액이 급감한 것은 기준금리 인상 및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채권시장의 자금 경색이 나타나자 금융당국이 은행채 발행을 자제하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결과다.
대표적 우량 채권인 은행채 발행이 늘어나면 주요 기관의 투자 수요는 은행채 쪽으로 쏠리게 된다. 그 결과 은행채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일반 기업의 회사채 투자 수요는 더 줄어들게 되고 회사채 시장 경색이 심화된다.
은행채 발행이 막힐 경우 은행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안은 예·적금 금리 인상을 통한 수신고 확대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은행채 발행에 이어 수신금리 경쟁 자제까지 요청하면서 이마저도 어렵게 됐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24일 기준금리 인상 다음 날인 25일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확보경쟁은 금융시장 안정에 교란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업권간·업권내 과당경쟁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4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지만 시중은행들은 수신금리 인상에 나서지 않았다. 지난달 기준금리 인상 때는 금리 인상 발표 당일 앞다퉈 수신금리를 즉시 인상했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처럼 은행채 발행과 수신금리 인상에 모두 제동이 걸리면서 자금 확보가 어려워지자 일각에서는 시중은행들의 유동성 관련 지표가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올해 3분기 말 기준 시중은행들의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KB국민은행 92.82% ▲신한은행 94.08% ▲우리은행 97.22% ▲하나은행 100.37% 등이다. 은행권 관계자들은 연말에는 LCR 비율이 90%대 중반까지 낮아질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시장안정을 위한 당국의 정책 방향이 일부 공감하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은행권 자금조달의 유연성을 풀어줄 수 있는 규제 완화 정책도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 역시 “은행채 발행에 이어 수신금리 인상까지 어려워지면서 은행의 핵심 자금조달 수단이 모두 제한됐다”며 “회사채 시장 위축으로 기업대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금조달 수단이 확보되지 못하면 유동성 관련 지표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토로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은행채 발행을 사모 형식으로 허용하는 방식으로 은행의 자금 조달 경로를 열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은행권에서는 해당 방안이 실효성이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권 자금조달 방안의 일환으로 생각되나 법적 제반 사항 해결이 당국 차원에서 선행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실효성은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