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취임 첫해 “한 것은 많지만 변한 것은 많지 않다”고 자체 평가
패시브 부문 강화로 정체성 변화 필요성 강조···ETF 활용 자산배분 전략에 중점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회사 제공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사진=한국투자신탁운용

[시사저널e=이승용 기자]‘한국 ETF의 아버지’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가 취임 첫해를 마무리해간다. 그는 지난 2002년 삼성자산운용에서 국내 1호 ETF인 ‘KODEX200’을 선보였고 이후 삼성자산운용에서 ETF를 총괄하다 올해 초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로 전격 영입됐다.

그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의 ETF 브랜드를 KINDEX에서 ACE로 교체하는 등 한국투자신탁운용의 ETF경쟁력 강화에 중점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배 대표는 만족하지 않고 있다. 갈 길이 여전히 멀다는 것이 배 대표의 냉정한 자체 평가다.

- 20년 다닌 삼성자산운용을 떠나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로 취임한 첫해가 마무리되어 간다. 취임 첫해를 평가하자면

목표했던 바에 좀 많이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 한 건 많은데 변한 건 아직 많지 않다. 이게 참 어려운 거 같다. 단순히 열심히 잘하는 건 답이 아니다. 1등 하던 회사가 점점 떨어지고 있는데 반등을 꾀하려면 회사의 변화를 이끌어야 하는데 아직 기대에 못 미친다.

지금 시장은 펀드 대신 ETF, TDF, OCIO 등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 주식형이나 채권형 펀드는 5년 후 계획을 잡아도 성장률이 높지 않다. 심지어는 부서 소속원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변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아직 내부 인력구성이나 방향성에 대한 공감이 부족한 면이 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여전히 펀드 등 전통자산운용 등에서 수익이 나고 있는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끓는 물 속의 개구리가 될 수 있다. 자연스러운 사업전환이 생각보다는 늦어지고 있다.

- 삼성자산운용에서 20년을 근무했다. 아무래도 삼성자산운용이랑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지 않나? 기업문화부터 회사 시스템까지 다를 것이다

장단점이 섞여 있다. 아무래도 전 직장은 패시브 투자 쪽으로 넘어가는 것에 대비하기 위한 회사의 준비가 오랜 시간 이뤄졌던 곳이고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여전히 액티브 투자 하우스로서의 강점을 가지고 있다. 개개인의 능력이나 퀄리티는 여기가 더 좋은 것 같다.

결국 회사의 역량을 어디에 집중하느냐 차이다. 패시브 투자로 중심을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직원들을 새로운 방향으로 잘 이끌어나가는 것이 내 과제다. 사람을 새로 뽑아서 다 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현재 시장 상황은 ETF 등 부문에서 인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 삼성자산운용은 대부분 내가 뽑아놓고 키웠던 사람들이라 같은 방향을 추구했었지만 지금은 여기 직원들을 변화하도록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자산운용에서도 인력 양성에 공을 많이 들였다. 한국투자신탁운용에서도 직원들의 인력 양성에 힘쓰겠다.

- ETF 시장에서 삼성자산운용이나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양강 체제가 확고하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양강 체제 속에서 이들을 추격할 수 있을까

장기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삼성자산운용의 AUM 규모가 비슷해지는데 약 10년이 걸렸다. 리더가 확신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투자하니깐 밑에 직원들도 안 따라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추격 발판은 적극적인 인재영입과 성과에 대한 보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삼성자산운용도 그 부분에 대한 이해가 생겼으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출발선이 같다면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지만 현재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출발선이 뒤에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지금은 모든 자산운용사들이 같은 ETF마케팅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틀을 바꾸지 않고는 추격이 쉽지 않다. 결국 제가 생각할 때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야한다고 본다.

- 구체적인 방향성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우리는 캡티브 물량이 없다. 우리보다 상위권에 있는 자산운용사들은 은행이랑 보험사를 끼고 있다. 우리가 승부를 보기 위해서는 비즈니스의 대의명분과 실력을 갖춰야 한다.

자산운용사들은 대부분 단기 수익에 집중하고 고객들의 자산증식에는 큰 관심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회사의 의사결정 기준을 회사 이익이 아니라 고객들의 자산증식에 맞춰야 한다.

특히 평균 고객의 자산증식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운이 좋은 고객은 우리 비즈니스의 목표가 아니다. 운이 좋고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평균적인 일반 투자자들이 장기적으로 돈을 버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자산운용업이 어려운 이유는 정답이 없고 해답만 있기 때문이다. 정답은 지나고 나서 돌이켜봐야 알 수 있다. 지나고 보니 어디에 투자했어야 했다고 하는 식이다. 해답은 최고의 순위를 내는 것이 아니라 가장 합리적인 순위를 내고 그것이 쌓여서 시간이 지나면 결국 최고의 성과를 내는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로 코스피가 1500선일 때 증시에 들어온 사람들 가운데 지금 손해보고 있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투자방법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투자자들에게 올바른 방법을 안내해줘야 한다.

- ETF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일반고객들의 자산증식을 위한 핵심은 자산배분이다. 일반적인 투자자가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돈을 벌려면 자산배분을 통한 방식으로 부를 쌓아나가야 한다. 운이 좋아서 크게 벌고 그렇지 않으면 깨지는 방식으로는 자산을 증식할 수 없다. 특정 상품을 통해 고객들에게 큰돈을 안겨주는 방식은 지향점이 아니다. 그렇기에 내가 자산배분 본부를 만든 것이다.

우리는 고객들의 자산배분을 위해 ETF를 조합해서 제시해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ETF는 반도체에 해당한다. 스마트폰과 자동차에 반도체가 들어가서 어떻게 조립되느냐에 따라 제품이 달라진다. 자산배분의 70~80%는 ETF를 통해 이뤄진다. 펀드는 현실상 ETF의 이런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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