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분기 모바일 AP 가격, 전년 대비 80% 상승
엑시노스 경쟁력 약화에 가격 협상력 떨어지나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삼성전자의 지난 3분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매입액이 전년 동기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AP 단가 상승과 고환율 여파가 반영됐기 때문이지만, 자체 개발한 엑시노스의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고 퀄컴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삼성전자 가격 협상력이 약화됐단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내년 초 출시하는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S23’ 시리즈 전량에 퀄컴 AP를 탑재할 예정이어서 비용 부담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25일 삼성전자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분기 모바일 AP 매입액은 8조142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조1302억원)보다 97.1% 급증했다. AP 가격도 전년 대비 80% 상승했다. 전년 동기와 전 분기 인상 폭은 각각 10%와 58%였으나 이를 상회했다.
전자업계는 퀄컴 AP인 스냅드래곤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부품 조달 비용이 크게 증가했다고 분석한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에 시스템LSI사업부가 설계한 자체 칩셋과 스냅드래곤을 병행 탑재하지만, 엑시노스 성능 문제가 불거지면서 퀄컴 의존도가 높아졌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가 퀄컴에 가격 협상 주도권을 내줬단 평가도 나온다.
삼성전자가 올초 출시한 ‘갤럭시S22’ 시리즈에서 퀄컴 제품 비중은 75% 수준이고, 엑시노스2200은 유럽 일부 지역에만 적용됐다. 지난 8월 공개한 폴더블폰 ‘갤럭시Z폴드4’와 ‘갤럭시Z플립4에도 스냅드래곤8 플러스 1세대가 탑재됐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부품 가격은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3분기에 80%나 증가한 건 바잉 파워(구매력)가 약해졌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라며 “엑시노스 탑재율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퀄컴 입장에서는 가격 협상이 유리해진다. 미디어텍 기술력이 올라오고는 있지만, 아직 플래그십 제품에 넣을 정도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AP 시장에서 퀄컴 입지는 강화되는 추세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 2분기 퀄컴의 시장 점유율은 40.4%로 전년 동기(36%) 대비 4.4%포인트 상승한 반면 삼성전자는 미디어텍과 애플에 밀려 기타 업체로 분류됐다. SA는 삼성전자의 시장 점유율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AP 출하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6% 감소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모바일 AP 부문에서 퀄컴 의존도를 완화하고 부품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지난 2011년 엑시노스를 처음 선보였다. 퀄컴 출신의 모뎀 전문가인 강인엽 사장(현 DS부문 미주총괄 사장)을 영입해 제품 개발에 집중한 결과 2019년에는 시장 점유율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은 지난 9월 평택캠퍼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4나노 1세대 공정으로 엑시노스를 만들었는데, 공급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공급을 제대로 못할 거면 차라리 하지 말자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다”며 “시스템온칩(SoC) 개발 역량이 경쟁사의 3분의 1 수준이다. 현재 역량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갤럭시S23 시리즈에는 퀄컴 AP가 전량 탑재돼 삼성전자의 가격 협상력이 더 떨어질 수 있단 관측이 제기된다. 아카시 팔키왈라 퀄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컨퍼런스 콜에서 “갤럭시S23에서 퀄컴 적용 비율이 100%로 올라간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퀄컴이 최근 선보인 스냅드래곤8 2세대 성능이 뛰어나단 결과가 삼성전자 스마트폰 품질에는 긍정적인 요인이지만, 가격 협상에서 오히려 불리해질 수 있다”며 “AP 단가가 상승할 경우 갤럭시S23 출고가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