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실적도 어필에 소극적···주주들 '불편'
공공성·주주가치 균형 잡지 못해···주가 부진
또 낙하산 인사 가능성···정부 입장에 치우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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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IBK기업은행은 최근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다른 은행들이 그랬던 것처럼 역대급 실적을 거뒀다. 올해 3분기에 이미 누적 순익이 2조원을 넘어섰다. 상장된 기업의 주주들에겐 이보다 더 큰 희소식은 없을 것이다. 순익이 늘면 배당도 늘고 주가도 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업은행은 역대급 순익을 실적발표 첫 줄엔 이러한 ‘경사’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최대 순익에 대한 설명은 자료 뒷부분에 슬그머니 제시됐다. 전면에 등장한 내용은 중소기업 대출 공급 규모의 증가였다. 실적발표에서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에 대한 설명이 먼저 나오지 않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더구나 최대 실적을 거뒀으면 상장된 기업들은 어떻게 하면 이를 더 선명하게 부각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보통이다. 

기업은행이 호실적을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못한 것은 국책은행으로서 ‘이자장사’ 비판을 의식한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올해 초부터 정치권은 경기 침체로 대다수의 국민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은행은 이자장사로 손쉽게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다는 비판을 가했다. 이는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됐고, 금융당국이 직접 나서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대출 이자를 낮추라고 압박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은행권에선 이번 실적발표 자료에서 기업은행이 안고 있는 ‘딜레마’가 잘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은행은 정부가 전체 지분 60%를 넘게 가지고 있는 국책은행이다. 하지만 유가증권에 상장돼 있어 나머지 40% 지분 가량은 일반 주주가 가지고 있다. 이에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지원이란 ‘공공성’을 추구해야 하는 동시에 높은 수익성을 바탕으로 ‘주주가치 극대화’도 챙겨야 하는 의무도 있다. 다소 상반된 두 가치를 모두 추구해야 하기에 좋은 경영평가를 받기 어렵다.

기업은행은 국책은행으로서 이자장사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40% 가량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일반 주주들 입장에선 호실적조차 감추려 하는 기업은행의 행보는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역대급 실적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그 기업의 향후 주가 전망은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기업은행의 주가가 계속 부진한 이유도 공공성과 주주가치 사이의 균형을 잡지 못해 벌어진 결과라는 평가다. 현재 기업은행 주가는 1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코로나 이전 수준인 1만2000원선을 아직도 회복하지 못했다. 지난 2년간 은행권에서 ‘내로남불’이란 비판을 들어가며 예외적으로 시행한 고배당 정책도 ‘약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러한 기업은행의 독특한 소유·지배구는 조직원들이 ‘낙하산 인사’를 더욱 반대하는 현상과 무관치 않다. 공공성과 주주가치 모두를 챙기기 위해선 은행장이 조직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관(官) 출신 인사는 아무래도 정부 입장에 치우칠 가능성이 크다. 관료 출신 인사가 조직 수장으로 내정될 때 마다 조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단 우려가 나온 이유다.

관료 출신인 윤종원 기업은행장은 올해로 임기가 끝난다. 벌써부터 많은 인물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낙하산 인물이 내정될 가능성이 큰 분위기다. 관료 출신 인사가 또 조직 수장이 되면 기업은행은 그간 짓눌러왔던 딜레마를 더 풀어내기 어려워질 수 있다. 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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