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 업체서 상환 중단···코인런 비화 가능성 제기
전북은행, 고팍스와 실명확인 계좌 2년 재계약···신뢰성 하락 및 타격 불가피
가상화폐 시장, 시중은행과 협업만으로도 신뢰성 인정···신뢰 문제 있어 치명적
전북은행 "모니터링 지속적으로 실시, 현재 시장 상황 예의주시"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세계 3위 가상화폐 거래소 FTX 파산신청 여파로 국내 거래소 고팍스의 자체 예치 서비스 '고파이(GOFI)'에서 상품 출금이 중단된 가운데 가상화폐 실명계좌 서비스를 제휴한 전북은행 행보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운용 업체에서 상환을 중단하면서 빚어진 사태인 만큼 '코인런(대량 인출 사태)'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어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출금 지연 사태가 장기화되면 고팍스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물론 협업을 했던 전북은행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고팍스는 전북은행과 실명확인 계좌 재계약을 진행했다. 양사는 기존 6개월이던 계약 기간을 2년으로 늘렸다. 해킹이나 자금세탁 등 가상화폐 시장의 우발적 사고 발생을 우려해 통상 가상화폐거래소와 은행의 보편적인 계약기간이 6개월∼1년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결정이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부담을 감수하고 계약기간을 늘린 만큼 무엇보다 공고한 장기 협업 체계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고파이 출금 지연 사태가 발생하면서 고팍스에 실명계좌 서비스를 제공했던 전북은행은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다. 업계에서는 피해 발생 규모에 관계없이 전북은행이 고팍스와 함께 신뢰도 하락과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16일 고팍스는 미국 가상화폐 대출업체인 제네시스 트레이딩 서비스 중단 여파로 자체 예치 서비스 고파이 자유형 상품의 원금·이자 지급이 지연되고 있다고 공지했다.
고파이는 고객이 보유 중인 가상화폐를 맡기면 이에 대해 이자를 주는 상품이다. 가상화폐 가격 변동에 따른 시세차익과 이자수익을 동시에 올릴 수 있는 점이 이점으로 꼽히고 있다. 고객들이 맡긴 가상화폐를 제네시스 트레이딩을 통해 운용하는 구조다. 제네시스는 가상자산 벤처캐피탈 디지털커런시그룹(DCG) 산하 회사로 DCG는 고팍스의 2대 주주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네시스 트레이딩이 FTX 사태 여파로 유동성 위기에 빠져 신규 대출·환매를 중단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 21일 고팍스는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통해 "고객 자산 보호를 위해 고파이 자유형 상품 잔고 전액에 대해 제네시스에 상환을 요청했고 상환 요청이 최대 3일 이내로 이행될 것이라고 확답받은 바 있다"며 "그러나 제네시스가 신규 대여와 상환의 잠정 중단을 발표하면서 이행되지 않았고 곧 만기가 도래하는 고정형 상품의 만기 준수 여부 역시 불투명한 상태"라고 밝혔다.
고파이에는 자유롭게 입출금할 수 있는 '자유형' 상품과 예치 기간이 정해진 '고정형' 상품 두 가지가 존재한다.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자유형 상품이다. 자유형 상품은 고객이 출금을 신청하면 익일 오전 중 원금과 이자를 지급해야 하지만 계속해 밀리고 있다.
만기 도래 시에만 출금할 수 있는 고정형 상품도 문제다. 가장 빠르게 만기가 돌아오는 상품은 '131차 비트코인(BTC) 고정형 31일'이다. 오는 24일 고객에게 원금과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해당 상품의 경우 고팍스가 지급해야 하는 원금 및 이자가 약 24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비트코인 고정형 상품 외에도 'USDC 고정형' 상품이 있다. 만기일은 25일, 지급액 규모는 12억원 상당이다. '이더리움 고정형' 상품은 오는 30일 만기일을 앞두고 있으며 지급액은 대략 8원원 가량이다. 여기에 자유형 상품으로 지급해야 할 금액까지 더하면 최소 수십억 원 이상의 자금을 상환해야 한다. 제네시스 캐피탈이 만기 전까지 고파이 고객 자산을 상환하지 않으면 상품에 대한 원금과 이자 지급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고팍스 관계자는 "글로벌 블록체인 업체와 유동성 공급에 대해 논의 중이며 어느 정도 진척도 있었다"라며 "고정형 고파이 상품의 경우 아직 출금 지연 등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지급 여부를 보고 대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FTX 사태로 촉발된 유동성 위기가 가상화폐 전체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코인런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FTX 위기 여파가 크지 않았는데 고파이 사태는 실제 체감할 수 있는 첫 사례"라며 "맡긴 투자금을 실제 되찾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거래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이용자가 코인과 예치금을 빼내는 상황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불안정한 가상화폐 시장에서는 시중은행과 협업만으로도 신뢰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측면이 강하다. 여기에 가치의 변동성이 큰 코인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번 고팍스 사태는 신뢰 문제에 있어 치명적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본 신뢰를 지키지 못하면 시장의 반응은 예측이 불가능할 수 밖에 없다.
전북은행은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며 현재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서로 신뢰를 쌓아가면서 돈을 움직이는 것이 금융의 기본 원리이다"며 "모든 시나리오를 가정해 대응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