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계기 디지털 유산 관심···제도 미비로 IT 업체별 기준 제각각
국회 내 법제화 움직임 속 쟁점 조율 난관···“당사자 의사 명시 방향 바람직”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 배우 고 이지한씨는 최근 이태원 압사 참사로 유가족과 친구, 지인들의 오열 속에 영면에 들었다. 고인은 더 이상 세상에 없지만, 고인이 온라인 상에 남긴 흔적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고인의 페이스북에는 고인이 생전 한 디저트 회사 광고를 촬영했던 영상과 일상의 사진들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이태원 압사 사고를 계기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생전에 남긴 디지털 정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법체계 미비로 고인이 남긴 디지털 유산에 대한 제도적 허점이 노출되고 있다. 국회 내 입법 논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고인의 인권과 비용 등 쟁점 조율이 쉽지 않단 분석과 함께 디지털 자산 상속 여부를 당사자가 정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이 우선이란 조언이 나온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디지털 정보가 크게 늘어나면서 고인이 생전에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남긴 흔적이나 게임 아이템, 사이버머니 등 디지털 유산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유산 관련 제도는 미흡한 실정이다. 현재 디지털 유산 관련 법률이 없다보니 전통적 의미의 재산을 다루는 민법상 상속 관련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이로인해 고인의 디지털 정보 관리에 문제가 있단 지적이 나온다.
예를들어 재산 가치가 있는 디지털 유산은 민법을 준용해 처리하더라도 재산 가치가 없는 온라인 상 사진과 글은 상속될 수 없다. 또 사망자의 온라인상 개인정보 관리와 친족의 권리 행사 등에 있어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이다.
실제 IT 업체마다 디지털 유산을 관리하는 기준이 다르다. 싸이월드는 지난 6월부터 사망한 회원들의 사진과 동영상, 다이어리 자료를 유족에게 전달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개정 약관에는 회원 사망시 회원이 서비스 내에 게시한 게시글의 저작권은 별도 절차 없이 상속인에게 상속된다고 적시했다.
반면, 네이버는 회원 아이디나 비밀번호, 블로그 비공개글이나 이메일 등 비공개 정보는 유족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유족 요청시 회원탈퇴 처리 및 계정 중 공개된 정보의 백업 제공은 지원한다.
카카오는 유족에게 고인의 카카오계정과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유족 요청시 사망자 계정 삭제 처리는 해주고 있다.
IT 업계에서 디지털 유산 관련 업무 처리가 제각각으로 흘러가면서 국회에서도 여권을 중심으로 관련 입법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월 사망 또는 실종자의 디지털정보를 가족들이 승계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같은당 허은아 의원도 디지털 유산 관련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법제화까지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허 의원실 관계자는 “고인에 대한 인권과 디지털 유산 관련 비용 부분 등 각계각층에서 이해관계가 다른 부분이 있어서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인이 남긴 흔적을 개인정보와 디지털 자산 중 무엇으로 볼지가 법제화에 있어 가장 큰 쟁점이 될 것으로 분석한다. 개인정보는 일신전속권이라 가족에게도 자료를 줄 수 없지만, 자산은 유족들이 받을 수 있다.
개인정보와 자산 구분이 쉽지 않다. 고인이 남긴 사진 한 장도 돈이 될 수 있지만, 대부분 디지털 자산은 이메일 계정 등을 통해 본인 확인을 한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고인이 이메일 계정을 유족한테 넘겨야 디지털 자산에 접근할 권한이 생긴다. 근데 계정을 못 넘겨주고 숨지는 상황이다 보니 회사가 고인을 대신해 접근해 콘텐츠 등을 백업해 전달하고 있다”며 “이 때 회사와 가족간 요구 수준이 상당히 다르다. 회사는 개인 정보라는 관점에서 엄격히 보는 반면, 가족들은 개인 정보까지 유산이란 타이틀로 받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법제화할 때 당사자가 사후 개인정보 등 디지털 유산 전달 여부를 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게 시급하단 조언이다. ‘개인정보니 가족이라도 안 넘겨주겠다’, ‘유산이니 사후에 넘기겠다’는 걸 개인이 명시하는게 제일 바람직하단 것이다.
실제 입법에 있어 당사자가 명시할 수 있는 제도 도입에 방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김 교수는 “국민들이 쓰는 모든 약관에 이용 사이트에 있는 개인정보를 사망 뒤 삭제할지 가족에게 넘길지 명시하는 기능을 도입해 당사자가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며 “만약, 이런 기능을 사용하지 않거나 모르고 숨졌을 경우 국가가 어떤 방향을 제시할지도 법을 만들 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디지털 유산 관련 법안에 대해 당 차원에서 적극 지원에 나선단 방침이다. 여권 관계자는 “디지털 정보 관리는 당에서도 정책개발에 힘쓰는 부분”이라며 “국민 불편함이 없도록 디지털 유산에 대한 입법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