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관련 지표 호조에 금리 인상 속도 조절론 떠올라
달러 약세 전환 가능성과 경기 침체 관측 속 금 부각 전망 나와

[시사저널e=송준영 기자] 달러 강세에 짓눌려 있던 금을 다시금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CPI)에 이어 생산자물가지수(PPI)까지 상승폭이 둔화하면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론이 힘을 받는 까닭이다. 급격한 금리 인상 탓에 경기 침체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는 점도 금값 상승론에 힘을 더하는 요인이다. 

16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금 선물 가격이 반등을 시도하고 있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12월물 금 선물 가격은 지난 15일(이하 현지 시간) 기준 트로이온스(t oz)당 1776.8달러에 마감됐다. 이날 장중에는 1791.8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는데 1790달러를 넘어섰던 것은 지난 8월 15일 이후 처음이다. 

그래프=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프=정승아 디자이너.

금값은 이달 초만 하더라도 반등 기대가 크지 않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이 이어진 데다 내년까지 금리 상승폭이 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은 달러 가치 상승을 일으키는 요인이고 통상 역의 관계인 금값에는 부정적이다.

실제 금값은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지난 3월을 정점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금 선물 가격은 지난 3월 초만 하더라도 장중 2078.7달러에 거래됐었다. 이후 내리막길을 걷다가 연준이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한 이달 3일 1618.3달러까지 22%가량 하락했다. 이 기간 미국 기준금리 밴드 상단은 0.5%에서 4%로 높아졌고 달러인덱스(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는 97.41에서 112.93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둔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형성되면서 금값 움직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연준이 금리 인상 근거로 들었던 물가 상승률이 정점을 찍었다는 관측이 나온 것이다. 최근 발표된 10월 CPI 상승률(7.7%)이 시장 예상치보다 낮게 나왔고, 전날 발표된 10월 PPI 역시 시장 전망치보다 낮은 8.0% 상승을 기록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FF) 금리 선물 시장에서 연준이 12월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은 19.4%로 한 달 전 69.8%에서 큰 폭으로 낮아졌다. 대신 0.5%포인트 인상 가능성은 한 달 전 29.4%에서 80.6% 높아졌다. 시장에서는 오는 12월 연준이 0.5%포인트 금리 인상할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으로 기존 0.75%포인트에서 후퇴한 것이다. 

내년이 되면 금리 인상 속도가 더욱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IB(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지난 주말 고객들에게 보낸 분석노트를 통해 연준이 선호하는 물가지표인 개인소비지출(PCE) 근원물가지수 상승률이 내년 말에는 2.9% 수준으로 급격히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PCE 근원물가지수는 지난 9월 5.1% 상승을 나타냈었다. 여기에 연준의 2인자인 레이얼 브레이너드 부의장도 최근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지만 아마도 느린 속도의 (금리) 인상으로 가는 것이 곧 적절해질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경기 둔화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안전자산인 금에 긍정적인 요인이다. 금리의 급격한 인상이 실물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내년 세계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기준금리 급등, 민간 부채 부담을 꼽으며 글로벌 성장률이 연 2.4%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증권가에서도 금에 관심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지난 14일 ‘경기 변곡점에서 강한 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내년 상반기 경기 바닥 확인 과정에서의 하방 변동성이 존재하지만 제한적인 금리 인상 압박과 안전자산 수요는 금의 지지 요인이고 한 층 더 진정될 달러 역시 기회 요인”이라며 “내년 금에 주목할 필요가 있고 비중 확대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선 여전히 금의 투자 가치가 높지 않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한 투자업계 전문가는 “연준이 높은 금리 수준을 유지하고 글로벌 경기가 내년 안정적으로 연착륙하면 금의 인기는 생각보다 없을 수도 있다”며 “상대적인 자산 기대 수익률로 봤을 때 오히려 금보다는 높은 금리 상품에 대한 투자가 더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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