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사, 이달 말부터 신용등급 정기평가 발표
건설 업황 하강 속 우발채무 우려
등급 조정·차입금 관련 지급보증·차환 여부 관건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건설 경기 둔화와 유동성 위기 심화로 일부 건설사들이 신용등급 위기에 처했다. 신용평가사들이 건설사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차입금에 대한 지급보증과 차환 여부를 들여다보는 만큼 PF 만기 연장이 힘든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등급 조정이 이뤄질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나이스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 등 신평사 3사는 최근 발표된 건설사 3분기까지 실적을 취합해 신용등급 조정 검토를 진행 중이다. 이르면 이달 말부터 다음 달까지 순차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통상 신평사들은 기업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6월 말까지, 기업어음(CP) 신용등급을 12월 말까지 정기 평가한다.
특히 신평사들은 현재 건설사의 지급보증과 PF 차환을 기반으로 한 현금흐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또 건설사들이 PF 차입금에 대해 지급보증을 제공한 것과 관련 만기 연장 여부와 금융기관과 협의 진행 상황도 살펴볼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A급 건설사들도 PF 우발채무 규모가 클 경우 신용등급 변동 가능성이 있단 분석이 나온다. 현재 롯데 계열사를 비롯해 HDC현대산업개발이 주요 신용평가사들의 장단기 등급 하향 검토 대상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건설은 지난달 강원도 레고랜드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채무불이행 사태 여파로 PF를 통한 자금 융통이 막히자 그룹 계열사로부터 자금 수혈에 나섰다. 지난 10일 롯데홈쇼핑으로부터 1000억원을 빌린 것을 포함해 롯데케미칼(5875억원), 롯데정밀화학(3000억원), 롯데알미늄(199억원), 호텔롯데(861억원) 등으로부터 한 달 사이 1조1000억원을 빌렸다.
신평사들은 주요 예정 사업장의 분양 실적과 PF 우발채무 관련 PF ABCP 등의 원활한 차환 여부 등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해 신용도를 재검토한다는 계획이다. 홍석준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실장은 “롯데그룹의 직간접적인 지원하에서 선제적으로 자금조달 방안을 추진하는 점은 긍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다만 현재 추진 중인 1조원 이상의 은행권 차입, 담보대출을 포함한 유동성 확보 방안의 최종적인 실현 여부에 대해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PF 우발채무와 관련한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하지 못할 경우 부정적 영향이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HDC현산도 신용도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웠다. HDC현산은 이미 신용등급이 한차례 떨어졌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달 HDC현산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하향 조정했다. 등급전망도 조만간 추가 강등 가능성이 있는 ‘부정적’으로 봤다.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손실 반영으로 영업 수익성이 크게 낮아진 것이 더해 최근 금리 변동성도 커지면서 부동산 PF 관련 재무 부담이 높아진 점을 반영했다.
HDC현산은 광주 사고 이후 자금 보충과 조건부 채무인수를 제공한 PF 유동화증권의 차환 위험이 대두되고 있다. 앞서 우발채무 규모 감축을 위해 일부 사업장 계약 해지와 PF 유동화증권 만기 시 회사의 대여금 전환, 토지 담보대출로 상환했다. 이에 따라 PF 유동화증권 규모는 지난해 말 2조7292억원에서 올해 6월 말 1조8183억원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차입금은 1조8021억원에서 2조4326억원으로 증가하는 등 재무 부담이 늘었다. 신용보강을 제공한 PF 유동화증권 상당수가 만기가 짧아 차환이 막힐 경우 재무 건전성이 더 악화될 우려가 큰 상황이다.
향후 광주 사고 관련 행정처분 수위와 수주 경쟁력, 분양 수입금 등의 현금흐름, PF 유동화증권 차환을 포함한 유동성 위험 관리 등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나이스신용평가 관계자는 “신규 수주가 부진과 진행 사업장의 분양 실적 저조 등으로 인해 영업실적·현금흐름이 저하돼 재무 부담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경우 등급 변동을 검토할 것이다”고 말했다.
건설업황이 하락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망은 더 어둡다. 가파른 금리 상승과 인플레이션 기조는 건설업종에 큰 악재로 부각되고 있다. 집값이 하락하고 원자재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는 데다 사업장도 점차 줄면서 건설산업에 대한 우려가 나날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더 큰 문제는 기업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기업의 회사채 발행 비용이 늘어나게 된다는 점이다.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하면 경영 상황이 악화되고 이것이 추가적인 신용등급 강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의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투자자들에게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 신용등급은 자금 조달 비용과 직결된다”며 “신용등급 하락으로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면 경영 상황도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