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노선 사업사 선정 잇단 유찰, 기계적 공고만 되풀이
C노선 도봉구간 ‘지하화→지상화’ 무단 변경해 논란 키워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윤석열 정부의 역점사업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사업이 국토교통부의 안일한 일처리로 인해 지연되는 모양새다.
B노선은 재정구간에 이어 민자구간까지 시공사 선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민자구간은 지난 1일 사업신청서를 받은 결과 대우건설 단독응찰로 유찰됐다. 국토부는 한차례 더 경쟁 입찰을 추진한 후 내년 1월 중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재공고를 통해 경쟁 입찰이 성사될진 미지수다. B노선의 사업성이 높지 않은 데다 유력한 경쟁자였던 대우건설·포스코건설·현대건설·DL이앤씨 등이 컨소시엄을 꾸리면서 사실상 이에 맞설만한 경쟁자가 나타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재정구간 역시 사업 진척이 더디다. 국토부는 재정구간 1∼4공구를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 방식으로 발주했다. 이 중 4공구를 제외한 1~3공구는 경쟁입찰이 성사되지 않아 네 차례나 유찰됐다. 연이은 유찰에 사업 지연 우려가 커지자 국토부는 단독 입찰자를 대상으로 수의계약을 검토했다. 하지만 최근 종합심사낙찰제(설계·시공 분리입찰)로 다시 방향을 틀었다. 대형 철도건설공사의 수의계약 전환 사례가 거의 없고 얼마 전 턴키에서 종합심사낙찰제로 변경한 남부내륙철도와의 형평성을 고려한 것이다.
연이은 입찰 불발로 연내 사업자를 정한 뒤 내년 하반기 착공하려던 B노선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됐다. 우선협상대상자나 종합심사낙찰제로 입찰 방식을 바꿔 시공사를 선정한다고 해도 이미 일정에 차질이 생긴 만큼 국토부가 공언했던 2024년 상반기 착공은 어려울 전망이다.
업계에선 국토부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실적으로 경쟁입찰 성사가 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계적인 공고만 되풀이했다는 것이다. 현재 재정구간 2공구와 3공구에 단독 참여한 DL이앤씨, 현대건설은 확실한 연고권을 갖고 있다. 연고권이란 입찰할 사업과 인접한 지역에서 공사를 진행 중일 경우 갖게 될 시너지 효과나 각종 장점을 의미한다. 인근 지역에서 이미 시공을 하는 회사와는 경쟁력에서 밀려 기술형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사업 자체가 철도 공종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공사로 꼽히는 점도 경쟁 입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GTX 사업은 수도 서울과 수도권 주요 지점을 지하 50m 이상 대심도로 연결하는 철도사업이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이런 난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 건설사는 국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다. 대우건설(1공구), DL이앤씨(2공구), 현대건설(3공구) 등이 각 구간 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한 배경이다.
C노선 역시 국토부의 불찰로 사업 지연 위기에 놓였다. 지하로 깔아야 할 노선을 면밀한 검토 없이 지상으로 바꾸면서 사업에 차질을 빚게 됐다. 문제가 된 곳은 ‘창동역~도봉산 구간’(도봉구간)이다. 당초 국토부는 2020년 10월 C노선 전 구간을 지하화로 계획했지만, 두 달 뒤인 12월 돌연 도봉구간을 지하터널 구간에서 제외한다고 시설 사업 기본계획(REP)에 고시했다.
도봉구간이 지상화로 될 경우 민간사업자는 공사비 절감에 따른 수천억원대 추정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반면 철로 주변 주민들은 소음·진동·분진 등의 불편이 예상됐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도봉구는 “변경된 배경이나 타당한 설명 없이 국토부가 계획을 바꿨다”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원은 최근 감사 결과를 통해 국토부가 도봉구간 지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업무처리가 부실했다고 지적했다. 도봉구간의 지상화는 소음·환경 피해 등과 직결되고 고시된 총사업비와 차이가 발생하는 등 사업의 주요 내용 변경에 해당돼 ‘민간투자사업기본계획’에 따라 민자 적격성을 검토해야 했다고 봤다. 하지만 국토부는 이러한 조치 없이 민간사업자와 실시협약 체결을 추진하는 등 사업을 강행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국토부 장관에게 C노선 사업 담당자와 팀장을 중징계하고 실무 직원은 징계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내년 1월 나오는 민자 적격성 결과를 토대로 합리적인 실행 대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국토부는 지역 주민 민원과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나서야 지난 3월 협상을 중단하고 민자적격성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외부에 의뢰해 또다시 검토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당초 C노선은 지난 3월 시공에 들어가 2028년 개통할 예정이었다. 사업 지연 탓에 개통 시점은 최소 6개월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하화 때문에 사업비가 증가하면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 컨소시엄 측이 사업을 포기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우선협상대상자 선정부터 다시 해야 한다.
국토부의 불찰로 인한 피해는 노선 완공을 손꼽아 기다리던 수도권 주민들에게 돌아가게 됐다. 국토부가 조금만 더 신경 썼다면 피할 수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지금부터라도 안일한 태도를 버리고 수습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 GTX 사업은 국민에게 가장 시급한 인프라 사업이다. 정상화를 위한 여러 각도의 방안을 고안해 이른 시일 내에 해결 방안을 내놓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