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직접권리 행사하려면 국가배상청구 불가피···“판례상 요건 충족”
재난안전법, 국가배상법, 경찰관직무집행법 등 소송 근거 될 듯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이태원 참사에서 국가가 질서유지를 위한 조치를 하지 않는 등 부작위에 의한 위법행위를 주장하는 집단소송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경찰관이 그 권한을 행사에 필요한 조취를 하지 않은 행위가 ‘현저하기 불합리 했는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무법인 굿로이어스와 법무법인 광야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위한 국가배상청구 소송인단을 모집한다고 10일 밝혔다. 참사에 대한 책임자가 법적으로 처벌과 징계를 받아야 하지만 희생자와 유족이 직접 권리를 행사하는 방법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하는 국가배상청구가 사실상 유일하다는 게 소송의 배경이다. 이날 오후 현재까지 십수명의 유족이 소송 진행 의사를 밝혔다고 전해졌다.
두 법무법인은 이번 참사가 대법원 판례가 밝히고 있는 국가배상청구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본다. 대법원 98다16890판례(1998년 8월 선고)는 “경찰관이 그 권한을 행사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것이 현저하게 불합리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그러한 권한의 불행사는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 되어 위법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양태정 변호사(굿로이어스)는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에 대규모 인원이 몰린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참사 발생 4시간 전 경찰에 통제를 요청하는 신고가 여러 건 접수되었음에도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공무원인 경찰이 직무상의 의무를 행사하지 않은 위법이 있다고 보이고 경찰 스스로도 이러한 과실을 인정하고 있다. 판례가 밝히고 있는 요건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재난안전법)도 소송의 근거가 될것으로 보인다. 이 법은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를 ‘재난관리책임기관’으로 구체적인 의무를 부담(제3조 제5호)하게 하고,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장에게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의무(제25조의2 제1항)와 재난상황 보고의무(제20조)를 규정하고 있다. 또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서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국가배상청구가 제기되더라도 소송은 수사기관의 수사결과를 통해 사실관계가 확정된 뒤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 전수미 대표변호사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향후 희생자와 유족에게 배상금과 위로금을 지급할 여지도 있지만, 국가 등이 책임을 벗어나려거나 경감하려는 시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시작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 모임(민변)도 지난 8일 10.29 참사(이태원 참사)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유가족들에게 법률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민변 이창민 변호사는 “경찰청장·서울경찰청장·용산경찰서장 등 일선 경찰관들을 지휘·감독할 지위에 있는 자들은 사전 대비책을 부적절 또는 불충분하게 계획해 참사의 원인을 제공했다”며 “참사 발생 직전·직후에도 그 권한을 행사해 적절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아 참사의 피해가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러한 지휘·감독권자의 권한의 부적절한 행사는 경찰관의 위험발생방지조치 의무를 현저하게 위반한 것에 해당한다”며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