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안전법, 중앙행정기관도 ‘재난관리책임기관’ 규정···의무도 부담
판결·결정례,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 책임 인정···피해자 법률지원 약속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15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10.29 참사’의 법적책임을 재난책임기관인 서울시와 행정안전부에도 물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찰은 현재까지 지방자치단체인 용산구와 경찰, 소방당국의 과실 여부를 규명하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데, 중앙행정기관까지 법적책임이 발생한다는 취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는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법률검토 의견을 밝혔다. 주장의 근거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재난안전법)이다.
오민애 변호사는 “재난안전법은 재난, 안전사고에 대한 예방 및 대응과 관련한 기본법으로 제4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자연재난 및 사회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책무를 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법은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를 ‘재난관리책임기관’으로 구체적인 의무를 부담(제3조 제5호)하게 하고,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장은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의무(제25조의2 제1항)가 있고, 재난 발생시 응급조치(제37조)와 동원명령(제39조) 및 위험구역의 설정(제41조), 통행제한(제43조) 등에 관한 권한을 정하고 있다.
오 변호사는 “서울시 및 서울시장의 경우 핼러윈을 앞둔 주말 10만명, 최대 30만명의 인파가 몰릴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며 “서울시가 어떤 논의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지만, 이전 핼러윈 행사나 대규모 집회의 경우 교통통제, 안전담당 공무원 배치 등을 통해 안전관리를 해왔던 것에 비추어 볼 때 재난예방조치를 취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행정안전부장관의 경우에도 “재난안전법상 지방자치단체가 행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조정하는 지위에 있고, 동시에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의 업무를 총괄하는 지위에 있다”며 “지방자치단체의 안전대책을 점검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장이 부담하는 ‘의무규정’이 적용되는지는 서울시와 용산구에서 핼러윈을 앞두고 어떤 논의를 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진 후 명확히 할 수 있다”면서도 “수많은 인파가 모이고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음을 예상했음에도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 국가나 관련 공무원에게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작위의무를 인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전대책을 점검 및 관리하지 않은 행정안전부 또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 법원 판결·헌재 결정례,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 책임 인정
민변은 부작위(어떤 행위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이를 하지 않는 것)로 인한 국가배상책임 역시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2019년 5월 우면산 산사태로 사망한 망인의 아들이 제기한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서초구의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2017다201545판결31)를 예시로 들었다.
민변은 “대법원은 구체적인 법령상 근거 규정이 있는 경우뿐만 아니라 국민의 생명·신체 등에 위험상태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상당한 우려가 있는 경우 국가는 국민의 생명 등을 보호할 포괄적인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했다”며 “구체적인 법적 책임이 문제되는 경우에도 반드시 법령에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부작위)가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고 설명했다.
헌법재판소의 2008년 12월 결정례(2008헌마41)에도 헌재는 “생명·신체의 안전에 관한 권리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권이다”고 전제한 뒤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이 위협받거나 받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 국가는 그 위험의 원인과 정도에 따라 사회·경제적 여건과 재정사정 등을 감안하여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에 필요한 적절하고 효율적인 입법·행정상의 조치를 취해 그 침해의 위험을 방지하고 이를 유지할 ‘포괄적 의무’를 진다”고 판단했다.
이창민 변호사는 “경찰청장·서울경찰청장·용산경찰서장 등 일선 경찰관들을 지휘·감독할 지위에 있는 자들은 사전 대비책을 부적절 또는 불충분하게 계획해 참사의 원인을 제공했다”며 “참사 발생 직전·직후에도 그 권한을 행사해 적절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아 참사의 피해가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러한 지휘·감독권자의 권한의 부적절한 행사는 경찰관의 위험발생방지조치 의무를 현저하게 위반한 것에 해당한다”며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민변은 10.29 참사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유가족들에게 법률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원인규명을 위해 증거보존 신청도 진행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