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혼란 가중시켰다" 비판 이어지자 입장 선회

서울 종로 흥국생명 본사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흥국생명이 결국 외화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권(콜옵션)을 행사하기로 했다. 당초 콜옵션 행사를 포기하기로 했지만, 채권시장의 투자심리를 크게 위축시켰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결정을 번복했다. 

흥국생명은 지난 2017년 11월 발행한 5억 달러(약 6990억원) 규모의 해외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조기상환권(콜옵션)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고 7일 밝혔다. 최근 콜옵션을 시행하지 않기로 결정한 탓에 심화된 금융시장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이번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당사의 기존 결정으로 인해 야기된 금융시장의 혼란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현재 당사의 수익성 및 자금유동성, 재무건전성 등은 양호한 상황이며, 향후 추가적인 자본확충을 통해 자본안전성을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업계의 관심은 흥국생명이 어떻게 자금을 조달해 투자금을 상환해줄 것인가에 쏠린다. 일각에선 금융당국과의 협의 아래 흥국생명이 환매조건부채권(RP)을 4000억원 규모로 발행해 이를 시중은행이 매입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모기업인 태광그룹이 신종자본증권을 사들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신종자본증권은 후순위채권과 함께 금융사의 자본을 늘리기 위해 발행하는 자본성증권이다. 만기가 없지만 보통 발행 후 5년이 되면 발행사가 상환해주는 콜옵션이 붙어있다. 콜옵션 행사 결정 권한은 발행사에 있지만, 옵션 행사일이 오면 투자금을 상환해주는 것이 시장의 암묵적인 약속이다. 국내 자본시장에서도 지난 2009년 우리은행의 후순위채의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자본성증권의 콜옵션이 행사됐다. 

흥국생명은 지난 1일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공시했다.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행사하기 위해서 금융사들은 보통 새로운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차환발행) 상환할 자금을 모은다. 신종자본증권 상환으로 인해 자본이 깎이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최근 시중금리가 크게 오르고 ‘레고랜드 사태’로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차환발행을 위한 투자자들을 모으는데 실패했다. 연 8%의 발행금리를 제시했는데도 투자자들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콜옵션을 포기한 것이다. 

흥국생명의 결정으로 채권시장의 투자심리는 크게 위축됐다. 그렇지 않아도 채권시장은 ‘레고랜드 사태’로 급격히 얼어붙었는데, 투자자들과의 신뢰를 어기는 일이 또 발생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시장을 지배하면서 자금순환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것이다. 

시장에선 모기업인 태광그룹에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태광그룹이 자사의 자금을 활용해 흥국생명의 해당 신종자본증권을 사들여 투자금을 상환해줘 이번 사태를 막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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