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3분기 사망 근로자 510명, 중대재해법 시행 전보다 8명 증가
정부, 중대재해법 감축 로드맵·개정안 ‘만지작’···노동계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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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빈 수레가 또 요란했다.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고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 및 경영자에 책임을 묻겠다던 ‘중대재해처벌법’이 ‘중소재해처벌법’으로 전락하는 모양새다.

올해 1월 시작돼 조만간 시행 1년을 맞이함에도 모호한 법 규정과 해석에 사업현장에 혼란을 가져왔고, 안전사고로 인한 사망자 숫자도 줄이지 못했다.

올해 1~3분기 사고로 숨진 근로자는 510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사망자는 8명 늘었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됐음에도 근무하다가 숨진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전부터 각 기업은 현장의 안전교육과 관리를 크게 강화했지만 사망자는 더욱 많아졌다.

안전 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해 CEO 등 사업주에게 더 큰 책임을 묻겠다며 처벌 강도를 강화했지만 현장의 사정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올해 400건이 넘는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했지만 현재까지 경영 책임자가 구속된 경우는 없다. 시행 전부터 기업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중대재해법이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속 빈 강정’이나 다름이 없다.

더욱이 정부는 기업집단이 중대재해법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자 감축 법안까지 준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당초 지난달 말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과 함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하려 했다.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중대재해법 패러다임을 기존의 ‘처벌 및 규제’에서 ‘자율 및 예방’으로 바꾼다는 것이 핵심 골자다.

윤석열 대통령도 최근 경북 봉화 광산 붕괴 사고 발생 직후 산재 대책의 핵심이 처벌이 아닌 예방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의 변화 방향과 일치한다.

그러나 감축 법안 및 시행령은 SPC그룹의 계열사인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로 여론의 큰 반대에 부딪혀 공개 시기가 이달 말로 미뤄졌다. 올해초 시행 후 형사처벌이 사실상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법령을 약화시키는 개정안이 발표된다는 것에 국민이 납득하지 않아서다. 노동계의 반발도 큰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여전히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나라 일터에서는 죽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영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현장에 혼선을 빚게 하지 않는 로드맵이나 개정안을 발표하는 것까지는 좋다.

단, 법의 취지를 훼손하는 ‘경영책임자의 책임 소재 여부’까지는 건드려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산재사망률이 최고 수준이다. 안전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실시한 중대재해법이 중소재해법으로 전락하는 최악의 상황이 나타난다면, 산재사망률 최고라는 불명예 꼬리표는 영영 떼어놓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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