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대출 시장 마비 속 시행사 메리츠증권에 러브콜
안정성 높은 자산도 금리 수준 높아 수익성 ‘쏠쏠’
수년간 이어진 리스크 관리 빛 봤다는 평가
[시사저널e=송준영 기자] 국내 증권사들이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 리스크에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메리츠증권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있어 주목된다. 당초 부동산PF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높은 탓에 부동산 침체 파고에 흔들릴 것으로 전망됐지만,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를 통해 얼어붙은 부동산PF 대출 시장에서 되레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는 까닭이다.
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메리츠증권이 최근 부동산PF 냉각기 속에서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금융권의 대출 규제 움직임 탓에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행사들이 메리츠증권의 문을 두들기고 있고, 메리츠증권은 안정성이 높은 사업 위주로 대출을 내주고 있는 것이다. 보수적으로 대출을 시행하더라도 금리 수준이 높아 수익성까지 챙기고 있다는 평가다.
부동산PF 대출 시장이 얼어붙어있다는 점에서 이는 두드러진 모습이다. 다른 금융사의 경우 신규 부동산PF 비즈니스 여력이 떨어지고 있다. 4대 시중은행은 사실상 PF 대출에 대한 심사 자체를 중단시켰고 농협, 신협 등 상호금융도 최근 PF 대출에 대한 신규 자금 공급 봉쇄에 나섰다.
부동산PF 대출에 적극적이었던 증권업계도 관련 비즈니스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단기금융시장이 경색되면서 부동산PF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의 차환 리스크가 불거지고 있다. ABCP 지급 보증을 한 증권사의 경우 이를 떠안아야 하는 우려가 발생했다. 신규 사업 보다는 유동성 관리가 더 급한 상황을 맞은 것이다.
당초 메리츠증권 역시 부동산PF 사업이 얼어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메리츠증권의 부동산PF 익스포저는 3조5580억원(PF 대출잔액+채무보증)으로 증권사 중 가장 많았다. 이러한 까닭에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 메리츠증권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 나왔었다.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가 주효했던 것이 기존 전망을 뒤엎은 배경으로 꼽힌다. 메리츠증권은 2019년 금융당국이 부동산PF 규제를 강화한 이후 점차적으로 부동산 리스크 관리에 돌입했다. 그 결과 메리츠증권 부동산PF의 95%가 안정성이 높은 선순위 대출로 구성 돼 있다. 보유 부동산PF 대출의 평균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의 경우 은행권의 60%보다 낮은 50% 수준이다. 담보 가격이 반토막 나더라도 자금 회수에 안정적이라는 의미다. 여기에 신용도가 높은 시공사와 계열 신탁사를 활용해 안전성도 높였다.
지난해부터는 자산 정리에도 공을 들였다. 기관들을 찾아다니며 자산 매각과 셀다운(재판매)에 주력했는데,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엑셀에 자산 목록을 몇 페이지에 걸쳐 펼쳐놓고 영업을 했을 정도”라고도 밝히기도 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대출 및 신용공여 제공 등 고수익을 추구하는 IB(투자은행) 사업모델에서 인수 후 셀다운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는 자산 건전성 지표로도 나타나고 있다. 메리츠증권의 순자본비율(NCR)은 9월 말 기준 1516%로 전 분기 대비 13%포인트 상승했다. 증권사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NCR은 영업용순자본에서 총위험액을 뺀 금액을 필요유지자본으로 나눈 것으로, 기준치인 100%를 밑돌 경우 금융당국의 개입이 발생한다. 최근 증권업계에서 NCR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일부 증권사의 경우 NCR 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
이밖에 메리츠증권의 지난 3분기 말 기준 유동성 비율은 134.2%로 전 분기에 비해 9.2%포인트 증가했다. 이는 기준치인 유동성 비율 100%를 웃도는 수치다. 증권사의 자산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고정이하 자산비율은 1.15%로 직전분기 3.28% 대비 2.13%포인트 감소하며 개선됐다. 고정이하자산비율이 내렸다는 것은 전체 자산에서 부실자산의 비중이 낮아졌다는 의미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시행사들이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다 보니 부르는 게 값이 됐다. 부동산PF 관련 익스포저가 높다는 측면에서 우려가 컸었는데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있는 형국”이라며 “물론 완전히 위험에서 자유롭지는 않지만 이번 사이클을 통해 시장 지위는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부동산PF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며 “기존에 해왔던 것보다 더 보수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리스크 관리도 더욱 강화하고 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