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발 자금경색에 이주비 대출 난항
대출 이자 급등에 볼멘소리···금리 7% 육박한 곳도
“사업성 저하 우려 커져···소규모 사업장 지연 불가피”

서울 동작구 흑석11구역 전경 / 사진=시사저널e DB
서울 동작구 흑석11구역 전경 / 사진=시사저널e DB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금리 인상과 레고랜드 발 자금시장 경색으로 인해 전국 정비사업장에 비상이 걸렸다. 은행들이 부실 위험이 커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거부하면서 이주를 앞둔 주민들의 대출이 막혔고, 이미 대출을 받은 조합들은 급격히 늘어난 이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대구 수서구 범어동 ‘삼일맨션’(소규모 재건축)은 이주비 대출을 실행해 줄 은행을 구하지 못해 진땀을 빼고 있다. 지난 8월부터 이주비 및 사업비 대출 업무를 담당할 금융기관을 선정하기 위한 입찰을 두 차례 진행했지만 참여업체 부족으로 모두 유찰됐다. 삼일맨션 소규모 재건축은 지상 38층, 1개 동, 138가구를 짓는 사업이다. 대구 지하철 2호선 범어역과 가까운 역세권 단지에 대구지방법원 건너편에 위치해 입지가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주비는 조합원이 재건축·재개발 공사 기간 다른 집에 세 들어 살기 위해 필요한 전·월세 자금과 부동산 중개 수수료 등이다. 통상 조합 주선하에 조합원 개개인이 아파트 대지 지분 등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받는 형태다. 3~4년 전만 해도 은행들이 앞다퉈 이주비 대출을 제안했지만 최근 1금융권은 물론 농협·수협·신협 등 상호금융권까지 부동산 대출을 중단하면서 조합들이 어려움을 겪는 모양새다.

금융기관을 이미 선정한 단지들도 비상이 걸렸다.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주비 대출 금리가 기존 2%에서 5%로 껑충 올라서다. 경기 광명시 ‘광명 11R구역’ 재개발 조합은 지난달 은행으로부터 대출 이자를 올려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경우 대출 금리가 연 5.68%까지 오르게 돼 조합은 아예 재입찰에 나서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다만 레고랜드 사태 이후 은행들이 집단대출에 고삐를 바짝 죄고 있어 기존 은행을 대체할 곳을 찾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방 소규모 정비사업장의 분위기는 더욱 심각하다. 대구 동구 ‘신암제1구역’ 가로주택정비사업 조합은 최근 이주비 대출 은행을 선정했지만 고심이 깊어졌다. 올해 2월 4%대로 예상한 이주비 대출 금리가 6%대까지 치솟으면서다. 신암제1구역의 이주비 대출 금리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3.4%에 더해 가산비 3.16%로 총 6.56%에 달한다. 갑작스럽게 오른 금리로 인해 사업성 저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급증한 금리 탓에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을 빚는 곳도 등장했다. 흑석11구역 조합은 이달 1일부터 5일까지 추가 사업비 대출 접수를 받는다. 다만 이곳은 높아진 금리로 인해 조합원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앞서 대우건설은 기본 이주비(법적 한도 내 40%)에 추가 이주비로 40%(신용공여)를 제안하며 지난해 1월 시공사로 선정됐다. 문제는 추가 이주비 대출의 이율이 7.43%로 적용됐다는 점이다. 기본 이주비 대출 금리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금리 5.16%(HUG 보증수수료 별도)와 비교하면 2% 포인트 이상 높다.

여기에 대우건설이 2000억원 규모 이주비 대출 대주단 모집에 한차례 실패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레고랜드 사업 채무불이행 사태로 인해 채권 자체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가 떨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흑석11구역의 한 조합원은 “일부 조합원들 사이에선 한차례 대주단 모집에 실패한 만큼 금리가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며 “이런 고금리에 추가 이주비를 누가 이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또다시 대주단 모집에 실패할 경우 이주는 물론 사업까지 지연될 수 있어 걱정이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선 시공사가 정비사업 시공권을 따냈을 당시는 금리가 낮고 집값이 상승기에 있어 문제되지 않았던 사항들이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지금 사업을 시작하고 있는 사업장의 경우 PF 대출 거절로 인해 이주비 지원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대출이 이뤄진다 해도 추가적인 금리 인상과 부동산 경기 침체 탓에 갈등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 사업장의 경우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들이 참여하는 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만, 소규모 사업장은 은행들이 대출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어 사업 지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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