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5억 초과 아파트 대출 허용
전세퇴거자금대출 한도 확대 ‘40→50%’
잠실 등 강남권 아파트 수혜 기대
1주택자 실입주 가능해져 급매물 줄어들 듯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고가주택 시장에서 전세를 끼고 매입한 갭투자들의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대출을 허용하고 전세퇴거자금대출의 한도를 확대하기로 하면서다. 본인 집에 입주를 하려고 해도 세입자에게 내줄 거액의 보증금을 마련할 수 없어 급매물을 내놔야 했던 집주인들이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3일 정부 등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에 대한 세부방안을 논의 중이다. 앞서 정부는 무주택자와 기존 주택을 처분하기로 한 1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50%로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보유 주택, 규제지역, 주택 가격 등에 상관없이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현행 LTV는 비규제 지역은 70%, 규제 지역은 가격에 따라 20~50%가 적용되고 있다.
특히 이번 세부방안엔 1주택자의 기존 주택에 대한 전세퇴자금대출도 LTV를 50%까지 상향하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투기과열지구 내 15억 초과 아파트에 대해서도 대출을 허용할 전망이다. 현재 15억 초과 아파트는 일반 대출은 물론 전세퇴거자금대출도 막혀 있다.
이번 방안이 실행되면 전세시장 침체로 ‘역전세난’(세입자 구하기가 어려워지는 현상)을 겪고 있는 집주인들이 한숨 돌릴 전망이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선 집주인이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거나 퇴거를 예고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15억원이 넘는 아파트의 경우 모든 대출이 불가능하다 보니 집주인이 급매로 처분하거나 세입자가 보증금을 받기 위해 전셋집을 경매로 넘기는 사례가 적지 않다.
업계에선 전세가격이 15억원이 넘는 아파트가 많은 강남권에서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 규제가 완화되면 집주인들은 전세퇴거자금대출을 통해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게 된다. 보증금을 돌려준 이후엔 실거주를 하거나 월세 세입자를 받아 월세로 원리금 상환에 보충하는 등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최대 수혜지로는 집값 하락폭이 큰 잠실이 꼽힌다. 잠실은 지난 6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 1년 연장된 데다 대출까지 막혀 급매물이 속출하고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실거주 목적의 거래만 허가되고 전세를 끼고 주택을 거래하는 갭투자가 불가능하다. 다른 지역보다 수요가 제한적이다 보니 투자 목적의 거래가 끊긴 상황이다. 이에 따라 집값 하락세도 가팔라지고 있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송파구는 지난주 아파트값이 직전주 대비 0.43% 떨어지며 서울 25개 자치구 중 하락폭이 가장 컸다. 잠실 일대 거래 위축이 영향을 미쳤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세를 끼고 매수했던 1주택자들의 경우 실입주도 어렵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급매로 내놓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15억원 초과 아파트의 대출이 가능하지면 갭투자자들의 숨통이 트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9월만 해도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 재개는 없다던 정부가 한 달 만에 전격적으로 입장을 바꾸는 등 부동산 부양 시그널을 적극적으로 줬다는 점에서 거래가 살아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5억 초과 아파트에도 LTV 50%를 일괄 적용하는 건 매우 파격적이다”며 “이전 정부에서 제시된 고가주택 기준이 폐기된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앞서 고가주택의 거래를 억누른 채 중저가 주택의 거래만을 촉진하겠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졌는데, 이번 조치를 통해 주택 금액대에 무관하게 거래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소득 기준 대출 규제인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만큼 일부 고소득자를 제외하면 혜택이 크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올해 7월부터 총대출액이 1억원을 넘으면 은행권 기준으로 DSR 40% 제한을 받는다. DSR은 총소득에서 전체 대출의 원리금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총소득의 40%를 넘으면 추가 대출이 막히게 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DSR 규제가 여전한 상태에선 내년부터 LTV가 50%로 높아져도 대출 한도는 크게 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DSR이라는 문턱을 넘어야 하는 만큼 고소득자만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