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시장 경색 가중···금리인상 속도 조절론 급부상
변수는 소비자물가지수···정책 우선순위, '물가안정' 방점
상승폭 줄어드는 추세, 시차 고려하면 향후 전망 불투명
"상반된 목적 정책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상황···FOMC 금리결정도 영향줄 것" 

소비자물가등락률 추이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 속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자금시장 경색이 가중되면서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5%대 고물가와 1440원에 육박하는 고환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금리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지만 기업들이 잇따라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직접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관건은 오는 2일 발표될 소비자물가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오는 24일 예정된 올해 마지막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행보에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당초 지난 7월과 10월에 이어 역대 세 번째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지만 최근 채권시장이 경색되면서 셈법이 복잡해진 모습이다. 금리인상 속도 조절론이 급부상하면서 긴축 페달을 밟던 한국은행의 딜레마가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채권시장에 자금을 공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쪽은 유동성의 수도꼭지를 잠그고 다른 쪽에서는 풀어야 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여야 하는 입장에 처한 것이다.

그 동안 한국은행은 직접적인 유동성 공급 없이 핀셋 지원이 가능한 시장안정 조치는 하되 기준금리를 올려 돈줄을 죄는 원칙은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었다. 하지만 시장금리가 꾸준히 상승하는 과정에서 돈맥경화(유동성 경색) 현상이 나타나는 문제가 발생하자 고민이 커졌다.

최근 금융당국은 유동성 경색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전방위적 정책을 가동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반응이다.

지난달 23일 정부는 회사채와 단기자금시장의 자금경색 해소를 위해 50조원 이상의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 총 2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를 조성해 가장 부실 우려가 높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매입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다.

한국은행도 적격 담보대상 증권에 공공기관채와 은행채를 확대하고 차액결제 담보 비율을 동결시켰다. 특히 증권사와 증권금융 등 한국은행 환매조건부채권(RP) 매매 대상기관에 대해 6조원 규모의 RP 매입을 한시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처방에도 불구하고 시장 불안이 지속될 경우 기존 전망대로 큰 폭의 금리 인상은 단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기업들의 자금난이 쉽게 진정되기 어려운 만큼 자금경색이 더 심각해질 경우 베이비스텝으로 긴축 속도 조절에 나설 수도 있는 관측이다.

관건은 오는 2일 발표될 국내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 혼란 속에서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정책 우선순위에 '물가안정'을 두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 추이에 따라 금융통화위원회의 통화정책 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 7월 전년 대비 6.3% 상승한 것으로 조사된 이후 8월과 9월에는 각각 5.7%, 5.6% 상승하며 상승폭 자체는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5%대 후반의 물가상승률도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분석이지만 당초 경계감을 가졌던 수준보다는 낮은 물가상승률이 전망된다는 관측이다. 

시장에서는 지난달도 5%대 상승률을 보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의 기존 전망이었던 ‘10월 정점론’보다는 약 3개월 빠른 지난 7월에 이미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정점을 찍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향후 전망은 불투명하다. 소비자물가에 시차를 두고 반영되는 주요 경제지표가 상승 추세이기 때문에 당분간 5%대 고물가를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채권시장 불확실성 확대와 경기침체 우려 등을 고려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예상보다 높은 물가상승률이 이어진다면 금리 인상을 늦추거나 보폭을 좁히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업계 관계자는 "물가 상승 압력을 낮추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동시에 자금 시장에 유동성을 지원하는 상반된 목적의 정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달 초에 예정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금리결정도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속도조절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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