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협회장 선거 앞두고 취임 이후 가장 활발한 대외활동으로 존재감 과시
연임에 라임사태 부담되지만 디폴트옵션 도입 성과·현직프리미엄은 장점
연임 도전하려면 3년전 단임 선언에 대한 파기 관련 입장 정리부터 필요

[시사저널e=이승용 기자] 평소에는 적당히 일하다가 인사철이나 연봉협상 시즌을 앞둔 시기가 다가오면 유독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있다면 사장은 어떤 생각이 들까.

지난 2020년 1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나재철 현 5대 금융투자협회장의 임기는 올해 말까지다. 하지만 나 회장의 임기 3년 동안 최근처럼 나 회장이 바쁜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달 들어 증시가 급락하자 나 회장은 지난 12일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과 만나 증권시장 현안 논의를 위한 긴급간담회를 개최했다. 이어 17일에는 김주현 금융위원장에게 시장안정화 대책을 건의했다.

나 회장은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 등으로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자 18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만나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금융안정특별대출 제도 도입 등 시장안정화를 위한 방안을 건의했다.

이어 24일에는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등 주요 증권사 9곳의 대표와 함께 단기자금시장 경색을 해소하기 위한 ‘제2의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설립을 논의했다.

지난 3년간 나 회장을 지켜보면서 최근처럼 절실하고 뚜렷하게 금융투자협회장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듯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나 회장은 최근에서야 역대 금융투자협회장 가운데 가장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던 ‘검투사’ 황영기 3대 회장 이후 최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나 회장의 이런 행보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하지만 다가오는 차기 협회장 선거를 생각하면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없을 것이라고 무시하기도 힘들다.

금융투자협회는 조만간 별도의 이사회를 열어 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등 차기 회장 선출을 위한 절차를 개시할 예정이다.

차기 금융투자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출마를 공식화한 후보는 서명석 전 유안타증권 대표, 전병조 전 KB증권 대표, 김해준 전 교보증권 대표, 서유석 전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 구희진 전 대신자산운용 대표 등 5명이다.

최대 변수는 나 회장의 연임 도전이다. 나 회장은 공식적으로 연임 도전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역대 금융투자협회장 가운데 연임한 전례가 없었기에 나 회장이 연임하게 된다면 역대 최초다.

나 회장이 연임에 내세울 치적은 지난 7월 도입된 디폴트옵션(사전운용지정제도)으로 예상된다. 디폴트옵션이란 퇴직연금 가입자가 일정 기간 아무런 운용 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사전에 정해둔 기본값(디폴트·default)에 따라 퇴직연금이 운용되는 제도다. KBS가 TV수신료를 전기요금에 붙여 받는 것처럼 증권사 및 자산운용사는 별다른 고객유치 영업활동 없이 퇴직연금 운용에 대한 수수료를 받을 수 있으니 꽤 행복한 일이다.

나 회장이 연임에 도전하게 된다면 최근 행보로 현직프리미엄이 극대화되기에 가장 강력한 후보가 될 수 있다.

다만 연임에 발목을 잡는 요인도 적지 않다. 나 회장이 대신증권 대표 시절 불거졌던 라임펀드 사태가 대표적이다. 대신증권은 라임펀드 1조1760억원을 판매한 증권사였고 금융감독원은 2020년 11월 직무정지 처분을 의결했다. 해당 제재는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나 회장에게 여전히 적지 않은 부담이다. 게다가 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정권교체 이후 라임펀드 사건 재수사를 위해 임명된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나 회장이 연임하겠다고 나선다면 출마 자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은 없다. 선택은 투표권을 가진 회원사들의 몫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2년 대선 패배 이후 정계은퇴 선언을 했다가 1995년 7월 은퇴선언을 번복했고 결국 1997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번 금융투자협회장 선거판에서 협회비에 비례하는 차등의결권은 70%에 달한다. 증권사 현역 사장들의 지지는 호남몰표보다 더 든든한 기반이 될 수 있다.

다만 나 회장이 연임에 도전한다면 단임 선언 파기에 대한 입장정리가 최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회장은 3년 전 본인 입으로 “연임은 없을 것”이라며 “임기 3년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연임 도전에 앞서 왜 본인이 지금에 와서 단임 선언을 깨고 연임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그것이 유권자 및 경쟁후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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