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 불패’ 서울도 줄줄이 분양 연기
“늦출수록 금융 부담·인허가 압박 커져”
10대 건설사 공급 목표 달성률 50% 못미처

청약시장 한파 속 건설사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분양에 나설 경우 미분양이 불가피하고, 일정을 미루면 금리 인상으로 인한 금융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분양을 앞둔 건설사들의 속내가 복잡해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미분양이 늘어나는 등 청약시장에 한파가 불고 있어서다. 미분양 우려에 분양 일정을 줄줄이 미루고 있지만 시간을 늦출수록 금융비용 부담과 인허가 압박이 커져 마냥 늦출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공급에 나선다고 해도 집값 하락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적정 분양가를 책정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서울도 완판 어려워”···청약시장 한파에 건설사 몸 사리기

19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건설·SK에코플랜트는 지난달 서울 중랑구 중화동에서 분양하려던 ‘중화 롯데캐슬SK뷰’ 공급 시기를 이달로 늦추기로 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신반포 15차 재건축 단지)는 분양 일정을 아예 내년으로 연기했다. 동대문구 이문1·3구도 올해 4~5월 예정됐던 분양 일정을 내년 상반기로 미뤘다. 동대문구 휘경3구역과 성북구 장위4구역, 은평구 역촌1구역 등은 다음 달로 일정을 늦췄지만 이마저도 장담하기 어렵다.

분양 일정이 잇따라 밀린 건 미분양 우려에 건설사들이 몸을 사리면서다. 현재 지방뿐 아니라 ‘청약 불패’로 여겨졌던 서울과 수도권 청약시장에선 ‘완판’(완전판매)에 성공한 한 단지를 찾기 힘든 실정이다. 브랜드 파워를 앞세운 대형 건설사 물량에서도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다. 금리 인상으로 매수 부담이 커지고 집값이 추가 하락할 것이란 우려에 매수 심리가 위축된 영향이 컸다. 미분양 아파트는 2020년 5월 이후 처음으로 3만가구(9월 말 기준)를 넘어섰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그동안 서울과 수도권 주요 지역에서 선보이는 분양 단지의 경우 미분양 우려가 거의 없는 편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 여파로 매수 심리가 위축되면서 1순위 완판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어 “미분양으로 인해 할인 분양 등이 이뤄지면 제값을 받기 어렵고 조합·시행사들도 추가 부담금이 늘어날 수 있는 만큼 조금만 지켜보자는 분위기다”고 덧붙였다.

◇원자재값 상승에 공사비 갈등 커져···분양 일정도 차질 불가피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공사비 증액 문제, 조합 내 갈등 등도 분양 일정이 밀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시공사와 조합 간 체결한 계약서상 일정 기간 착공이 미뤄진 경우 물가 상승을 반영해 공사비를 증액할 수 있다. 하지만 공사비가 증가하면 조합원들의 부담도 커지는 만큼 협상에 어려움을 겪는 단지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서울 마포구 ‘마포자이힐스테이트’(공덕1구역)은 분양 일정이 다음 달에서 내년으로 미뤄졌다. 시공사(GS건설·현대건설)와 조합 간 공사비 증액 기준에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동구 ‘둔촌주공’ 역시 공사비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분양 일정이 올해 상반기에서 내년 1~2월로 연기된 상태다.

분양이 제때 이뤄지지 않다보니 올해 시공능력평가 10대 건설사의 주택공급 목표 달성률은 9월 말 기준 47.4%에 그쳤다. 목표 물량 18만5039가구 중 9만1469가구만 실제 분양됐다. 달성률이 50%를 넘긴 건설사는 현대건설(68.9%), GS건설(61.1%), 포스코건설(51.4%) 등 3곳에 불과했다. DL이앤씨(47.5%), 대우건설(44.9%), SK에코플랜트(46.8%) 등 나머지 건설사는 당초 계획했던 물량을 절반도 공급하지 못했다.

◇금리 인상에 금융 비용 부담 커져···“울며 겨자 먹기식 공급 나설 수도” 

건설사 입장에선 마냥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재무 부담과 인허가 압박이 커지기 때문이다. 최근 금리 인상 기조에 따라 분양을 미루면 금융비용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 건설업체는 인허가를 받은 후 2년 이내에 착공해야 하고 사유를 인정받으면 최대 1년 더 연기할 수 있다. 다만 주택 경기 하락을 이유로 인허가를 미룬다면 인허가를 다시 받기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분양에 나서자니 적정 분양가를 산정하기도 쉽지 않다. 건설사가 이익을 내기 위해선 공사비 상승분을 분양가에 반영해야 하지만 그만큼 미분양 위험도 커진다. 건설사나 시행사들은 분양 수익을 올려야 다른 공사에 착수하고, 이를 위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미분양이 대거 발생할 경우 자금 회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셈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지금 분양하면 미분양이 발생하고, 하지 않으면 금융 부담이라는 딜레마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앞으로도 분양 물량의 상당수가 연기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네 차례 연속 기준금리가 인상되면서 부동산 시장 침체 장기화가 불가피해지면서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미분양이 뻔한 만큼 건설사 입장에선 공급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다”며 “비용 부담이 있지만 재정적으로 버틸 여력이 있는 대형 시행사·시공사들은 최대한 미뤄보자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분양 시장이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되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분양에 나서는 곳도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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