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대란 따른 공장 가동률 하락으로 파업 영향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실질 임금 인상 중시하는 MZ세대 목소리 커지며 현대차 정년연장 갈등 빠르게 해결
한국GM·르노코리아, 적자 및 글로벌 본사 경고에 파업해도 추가 이익 많지 않다고 판단

/ 사진=김은실 디자이너
올해 완성차 5개사 노조가 파업 없이 임단협을 마무리 지었다. / 사진=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올해 완성자동차 노동조합이 파업 없이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이하 임단협) 교섭을 마쳤다. 과거 노조는 하투(夏鬪), 추투(秋鬪)를 반복하며 투쟁과 파업을 이어갔으나 최근에는 ‘무파업’으로 교섭을 마무리 짓는 모습이다. 

업계에선 노조 투쟁 방식 변화에 대해 반도체 대란으로 인한 수급 불균형과 기성세대와 MZ세대 간 입장차이, 파업 명분 약화 등을 이유로 꼽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기아 노조는 조합원 투표에서 잠정합의안을 가결하며 2년 연속 무분규로 임단협을 타결했다. 조합원 2만6490명이 참가해 찬성률 65.7%(1만7409명)을 기록하며 합의안이 통과됐다. 당초 노사는 이날 조인식을 열고 임단협을 최종 마무리 지으려 했으나 광명 공장에서 화재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해 일정이 미뤄지게 됐다.

기아 노사는 평생 신차 할인 축소를 두고 갈등이 있었으나 2차 합의안에서 휴가비 30만원 추가 인상과 장기 근속 퇴직자에게 전기차 할인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새로 넣으며 합의를 이끌어냈다. 올해 노조에 강성 집행부가 연이어 들어서며 파업 위기가 고조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으나, 실제로는 큰 마찰 없이 임단협 타결이 진행됐다.

앞서 현대자동차 노사가 4년 연속 무분규 임단협 타결을 마친 가운데 한국GM과 르노코리아자동차 노사도 무분규로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쌍용차는 2009년 이후 13년 동안 무쟁의·무파업을 유지 중이다.

이는 최근 반도체 대란으로 인한 수급 불균형 및 전세계 경기 침체 등 외부 요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반도체 공급 문제로 공장 가동률이 떨어진 상황에서 부분 파업 등을 벌이더라도 사측 타격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기 때문에 노조가 파업을 교섭 카드로만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출고를 기다리고 있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파업을 벌일 경우 반발 여론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노조 내 세대 교체도 원활한 임단협을 이끌어내는데 한 몫 거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현대차의 경우 정년 연장을 두고 노조 집행부와 사측간의 갈등이 이어지며 투쟁이 예고됐으나, 노조 내부에서 이를 두고 반발하는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노조가 한 발 물러나기도 했다.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시니어 촉탁제 및 임금 피크제를 폐지하고 정년을 만 61세로 늘릴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현대차 노조가 정년 연장을 요구하자 직장내 블라인드에선 ‘현대차 연구직의 현실’이라는 제목으로 “‘귀족 노조’라는 말이 우리를 강성 노동자로 만든다. 밖에선 떼쟁이 취급받는다”며 “매년 나오는 해고자 복직, 생산직 추가고용, 정년 연장은 지긋지긋하다. 노조가 있는 이곳에서 이유 없이 해고되는 사람은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처럼 실질적 임금 인상이 중요한 MZ세대들이 기성 세대의 무리한 정년 연장 요구안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를 내며, 임금 인상안을 중심으로 올해 임단협을 빠르게 마무리 지었다.

현대차와 기아 모두 역대급 임금인상안을 제시한 점도 임단협 타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현대차의 경우 임금 10만8000원(기본급+수당 1만원) 인상, 성과·격려금 300%+550만원, 주식 20주, 재래시장 상품권 25만원 지급하기로 했으며 기아는 9만8000원(호봉승급분 포함) 인상, 경영성과금 200%+400만원, 생산·판매목표 달성 격려금 100% 등에 합의했다.

한국GM과 르노코리아의 경우 최근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본사 측에서도 파업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하고 있다는 점 등이 무파업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또 적자가 계속되는 가운데 임금 인상을 계속 요구하는 것도 명분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GM은 지난해 3760억원 적자를 기록했으며, 르노코리아도 지난해 8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아울러 매해 반복되는 잦은 파업으로 인해 노조 내부에서도 피로감을 호소하는 조합원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르노코리아는 지난해 파업에서도 참여율이 30%에도 못 미치기도 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미중갈등, 러시아 사태, 반도체 대란, 전기차 전환 등 자동차 업계를 둘러싼 외부 환경 변수가 많아진 가운데 파업을 할 경우 노조 내부적으로도 부담이 크고, 국민들에게도 타깃이 될 수 있다”라며 “여기에 새정부가 노조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겠다고 언급한 만큼, 노조 입장에서도 무리한 파업보다는 실익을 챙기는데 우선시한 결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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