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장 재직 당시 친시장 기조 맞춰 소비자보호 기능 약화 지적
분조위 권고 충분히 재검토 가능 불구, 디스커버리펀드 피해자 요구 사항 완전 외면
기업은행 노조 반발도 변수, 외부 낙하산 인사 반대 입장···임명 시 노사 간 진통 예상

지난해 12월 전국사모펀드사기피해공동대책위원회가 서울 영등포 금융감독원 앞에서 '사모펀드 피해자 금융감독원 정은보 원장 탄핵 대회'를 개최했다. 사진=전국사모펀드사기피해공동대책위원회
지난해 12월 전국사모펀드사기피해공동대책위원회가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금융회사에 편향적인 금감원을 규탄하며 '사모펀드 피해자 금융감독원 정은보 원장 탄핵 대회'를 개최했다. 사진=전국사모펀드사기피해공동대책위원회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의 임기 만료가 가까워지면서 차기 행장 후보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양한 내·외부 인사가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에서 금융당국 수장을 지냈던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이 주요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 전 원장이 재직 시절 금감원 본연의 소비자보호 기능을 약화시켰다는 지적과 함께 당시 디스커버리펀드 피해자들이 요구했던 사항들을 외면했던 만큼 기업은행장 후보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기업은행 노조도 특수성과 전문성이 배제된 외부 낙하산 인사에 대해 반대 입장을 드러내면서 향후 임명 시 노사 간 진통이 예상된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차기 IBK기업은행장에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이 유력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기업은행장은 금융위원장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현 윤 행장의 임기는 내년 1월 2일로 마무리된다. 

업계에서는 이전 정부의 금융당국 마지막 수장인 정 전 원장이 주요 후보로 거론되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관건은 정 전 원장의 과거 행보다. 전임자였던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소비자보호 강화를 목표로 제재 일변도의 강공 정책을 펼친 것과 달리 정 전 원장은 금융사에 기운 언행으로 금감원 본연의 소비자보호 기능을 약화시켰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금감원이 금융업계의 감독기구라는 점에서 정 전 원장의 친시장 행보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다. 

정 전 원장은 취임 일성부터 '소통'과 '지원'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금융소비자 보호 실태 평가 실시 주기를 1년에서 3년으로 변경하고 종합검사를 유보했으며 시장질서 교란 혐의로 일부 증권사에 부과됐던 과징금도 취소하는 등 검사·감독 체계 개편을 친시장 기조에 맞췄다. 업계와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도 금융권에 지나치게 유화적인 스탠스를 보였다는 시각이다.

문제는 당시 사모펀드 사태가 피해고객 보상 등 사후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았고 금융당국의 책임론이 부각되는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사모펀드 사태 피해자 구제보다 금융사 감싸기를 우선하면서 금융권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편향적인 행보를 보였다는 평가다.

중심에는 디스커버리펀드 사태가 있었다. 디스커버리펀드는 문재인 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성 전 주중 한국대사 동생 장하원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대표가 운용한 'US핀테크글로벌채권펀드'와 'US핀테크부동산담보부채권펀드'로 2017년부터 IBK기업은행, 하나은행 등 시중은행과 증권사에서 판매됐다. 하지만 지난 2019년 4월 미국 현지 운용사 대표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사기 혐의로 기소되자 환매가 중단되며 투자자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해 4월 기준 피해액만 2562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IBK기업은행은 지난 2017년 4월 상품을 출시해 2019년까지 'US핀테크글로벌채권펀드'와 'US핀테크부동산담보부채권펀드'를 각각 3612억원, 3180억원 판매했다. 총 디스커버리펀드 판매액만 6792억원으로 금융사 중 가장 많았고 이 중 914억원이 환매중단됐다.

이에 피해자들은 100% 보상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정 전 원장 취임 이후 꾸준히 요청했지만 금감원 측은 묵묵부답이었다. 앞서 정 전 원장 취임 이전인 지난해 5월 금감원 분조위에서 기업은행에 원금의 40~80%의 배상비율 내에서 자율조정하라고 이미 권고했다는 것이 금감원의 입장이었다.

기업은행의 불완전판매 비율은 약 83%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문제가 되는 투자상품 불완전판매 비율이 20~30%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이다. 지난달에는 디스커버리펀드 관련 공시의무 위반까지 드러나 추가 제재가 확정된 상태다. 

최근 업계에 따르면 1년 반이 지난 현재까지도 기업은행 배상 합의는 투자 피해자 2명 중 1명 수준인 55%에 그치고 있다. 디스커버리펀드 회수액도 원금의 27% 정도인 242억원에 불과하다. 불완전판매 사태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나도록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이를 놓고 피해자들은 정 전 원장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금감원 분조위는 법적 효력이 없는 권고사항인데 취임 이후 충분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문제를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채 친시장 행보를 보이면서 외면했다는 지적이다.  

이의환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대책위원회 상황실장은 "정 전 원장이 재직 시절 친금융사 행보를 보이면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감독 업무를 하지 않았다"며 "본연의 역할을 하지도 않은 인물이 특히나 디스커버리펀드 피해액이 가장 컸던 기업은행장으로 임명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내부 반발도 변수다. 기업은행 노조는 최근 성명을 통해 차기 기업은행장 인사에 대한 하마평을 놓고 우려를 표했다. 노조 측은 "관료 출신 친정권 '낙하산' 행장은 조직에 대한 애정과 철학 부족, 왜곡된 노동관 등의 문제로 늘 부작용을 일으켰다"고 비판했다.

앞서 현 윤 행장이 오기 전에는 10년 동안 세 차례 연속 내부 인사가 행장을 맡았다. 하지만 지난 2010년 1월 윤 행장이 취임하면서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당시 기업은행 노조는 출근 반대 집회를 열 정도로 갈등은 첨예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달 전국 금융노조 총파업을 주도할 만큼 많은 인원을 보유하고 있다"며 "또 다시 낙하산 외부 인사가 임명된다면 노조의 강력한 저항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