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사상 초유 채무보증 거부에 자본시장도 ‘패닉’
부동산 PF 우려 확산···관련 사업 및 시장 위축 불가피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시사저널e=이승용 기자] 레고랜드 조성 사업을 위해 강원도중도개발공사(GJC)가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 ‘아이원제일차’가 발행했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해 강원도가 약속했던 채무보증 이행을 거부하면서 자본시장에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정부와 같은 신뢰도를 인정받았던 지방자치단체의 ABCP 관련 자발적 채무불이행은 예상하기 힘들었던 일이었기에 이번 사태의 충격은 한층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장 증권사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대한 신뢰도 하락은 불가피해졌다. ABCP와 사업적 관련성이 깊은 MMF(단기금융펀드)와 기업어음(CP) 시장 축소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PF 비중이 높은 저축은행업계에 대한 의구심 확산 등도 위험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 강원도의 부도처리 뒤통수···투자자들 전전긍긍

11일 BNK투자증권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에 서울 여의도 사옥에서 아이원제일차가 발행한 ABCP를 매입한 투자자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시작했다.

BNK투자증권 관계자는 “이날 회의는 ABCP 발행을 주관사이자 자산관리사로서 BNK투자증권이 주관하는 것”이라며 “ABCP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데 주력할 방침”라고 말했다.

앞서 레고랜드 사업을 맡은 강원도중도개발공사는 건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특수목적법인(SPC)인 아이원제일차를 설립하고 2050억원 규모의 ABCP를 발행했다. ABCP는 매출채권, 부동산 등의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유동화증권으로 자산을 쪼개 파는 방식에 해당한다.

발행주관은 BNK투자증권이 맡았고 강원도는 해당 ABCP에 대해 신용보증을 제공했다. ABCP의 성공적 발행을 위해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강원도가 대신 갚아주겠다는 채무보증을 한 것이다.

BNK투자증권은 해당 ABCP를 국내 10여개 증권사들을 대상으로 판매했고 증권사들은 매입한 ABCP를 다시 개인 신탁계정과 법인고객 계정 등을 통해 재판매했다.

하지만 ABCP 만기일인 지난 9월 28일이 오자 채무보증을 약속했던 강원도는 채무보증을 거부하고 대신 법원에 강원도중도개발공사에 대한 회생신청을 했다. 이에 아이원제일차가 발행한 ABCP는 결국 최종적으로 부도 처리됐다.

강원도는 무작정 채무보증을 이행할 경우 매년 100억원에 달하는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강원도는 법원이 강원도의 회생 계획안을 받아들일 경우 강원중도개발공사가 잔금이 납부되지 않은 대지 매매계약을 취소할 수 있고, 해당 대지를 새로운 투자자들에게 더 비싸게 팔아 기존 대출금을 반환할 수 있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레고랜드 사업은 전 강원도지사인 최문순 지사가 추진했던 역점사업으로서 영국 멀린사와 테마파크 부지에 대해 100년간 무상임대 등 불공정한 계약을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여기에 강원도가 주주로서 배당금을 받으려면 레고랜드 연매출이 최소 400억원을 넘어야 하는 내용도 계약에 포함되어 있어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자본시장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채무보증 불이행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예상한 적이 없었기에 충격파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법원이 회생절차를 개시하면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회수에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여 시장 파급효과도 상당할 것”이라며 “소송으로 가더라도 지자체가 보증 의무를 이행하라는 결론이 날 가능성은 있으나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수년간 투자기관들의 손실 부담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증권사 PF 넘어 저축은행·MMF·신탁으로도 불똥

이번 강원도의 레고랜드 ABCP 채무보증 불이행 사태의 후폭풍은 거침없이 확산되고 있다.

당장 지방자치단체가 채무보증을 선 다른 ABCP에 대한 신뢰도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이번 레고랜드 ABCP처럼 국내 지방자치단체가 채무보증을 선 ABCP 발행잔액은 총 1조3000억원에 달한다.

정대호 KB증권 연구원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지방자치단체의 신용보강에 따라 A1 등급이 부여된 유동화 증권이 C등급로 하향되고 이후 부도등급인 D까지 내려가며 유동화증권 신용보강 절차에 대한 시장의 우려와 의구심이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이번 사안은 강원도와 중도개발공사에 국한된 이벤트로서 다른 지자체의 유동화 보증채권의 신용도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자체가 보증한 유동화증권에 대해 투자자들이 회피 반응을 보이면서 관련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며 “지자체는 유동화증권의 차환발행이 안될 경우를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의 PF 관련 리스크도 재부각될 전망이다. 당장 주관사인 BNK투자증권은 최근 부동산 PF사업을 기반으로 사세를 확장해왔는데 이번 사태로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BNK투자증권뿐만 아니라, 다른 증권사들 역시 PF사업 관련 유동성 경색이 예상되고 있다. 최근 PF관련 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받고 있는 저축은행 업계도 피해가 전망된다.

백두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PF익스포저(위험노출액)에 대한 우려가 점증 중”이라며 “PF를 포함한 특정 섹터에서 차주의 영업이익률 하락으로 인해 내년 이후로 자산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ABCP를 주로 매입하고 있는 주체가 증권사 MMF 및 신탁계정이기에 관련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대호 KB증권 연구원은 “MMF가 CP편입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데 향후 ABCP에 대한 신규매수를 포기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CP를 적극적으로 운용해온 금전신탁 계정에서도 CP 매입 대신 부채상환 및 투자에 사용하면서 신탁사업의 성장도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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