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시절 도입, 2·16대책 핵심
후보지 76곳 중 8곳만 본지구 지정
재산권 훼손 논란에 보완책 내놨지만 반발 여전
“윤석열 정부 민간 개발 기조에 사업지 이탈 늘어날 듯”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공공이 주도해 역세권 등 도심 노후 지역에 주택을 공급하는 ‘공공 도심복합사업’ 상당수가 철회될 위기에 처했다. 공공 개발 반대와 재산권 침해 등의 이유로 주민들의 반발이 적지 않아서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주민 동의율이 낮은 지역에 대한 철회와 민간 개발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사업지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국토부는 공공 도심복합사업 후보지에서 주민 동의 현황을 재조사하고 있다. 당초 국토부는 작년에 후보지에 오른 지역 65곳은 지난달 18일까지, 올해 후보지로 지정된 지역 11곳은 다음 달 18일까지 사업에 대한 주민 동의율을 집계할 예정이었다.
공공 도심복합사업은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2·4대책의 핵심 정책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이 주도해 역세권과 저층 주거지, 준공업지역 등을 고밀 개발해 주택을 공급하는 내용이다. 정부가 후보지를 지정한 후 주민 동의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된다. 공공이 주도하지만 민간 건설사가 시공하고 용적률 상향과 기부채납 비율 최소화 등으로 토지주의 수익을 높여주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주목을 받았다. 또 통합 심의를 통해 사업 기간을 기존 10년에서 7년으로 단축시키고, 분양가상한제도 적용하지 않겠다는 제안도 나왔다. 예정 공급 물량은 서울 11만7000가구, 경기·인천 3만가구, 지방에 4만9000가구 등이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와 달리 사업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8차례에 걸쳐 전국에 76곳을 후보지로 지정했으나 본지구로 지정된 곳은 8곳에 불과하다. 본지구 지정을 위해선 ‘토지등소유자 3분의 2 이상 동의’를 충족해야 하는데 공공주도 사업에 대한 반발과 현금 청산 문제 등으로 대부분의 사업장이 동의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본지구 지정지 안에서도 여전히 상가 건물주와 일부 토지주들은 개발을 반대하며 지정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 소송을 진행 중이다. 사업에 반대하는 후보지 41곳이 모여 주민들 연합체인 ‘공공주도반대연합회’도 꾸려졌다.
반대하는 주민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후보지 지정으로 재산권 행사를 못하게 됐다는 입장이다. 앞서 정부는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지난해 6월 29일을 권리산정기준일로 지정했다. 이날 이후 후보지 내 주택을 매수한 자는 주택 보유 수와 상관없이 현금청산 대상이다. 현재 권리산정기준일 지정 이후 후보지 지정이 된 곳은 도심복합사업 후보지 76곳 중 24곳에 이른다.
반발이 커지자 정부는 지난 8월 첫 주택 공급정책으로 내놓은 8·16대책에서 후보지 발표 전 주택을 매수한 현금청산 대상 1주택 소유자에게 특별공급권을 부여하는 보완책을 내놨다. 아울러 다만 다주택자의 경우 여전히 현금청산 대상에 머물러 있어, 이들의 반대는 이어질 전망이다. 후보지로 지정된 지역의 한 주민은 “정부가 공공개발을 밀어붙인다고 해도 서울시와 엇박자가 나면 큰 동력을 얻기 힘들고, 주민 동의가 없으면 표류할 수도 있다”며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재산권이 묶이다 보니 불만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현금 대상자인 다주택자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가 8·16대책을 통해 ‘민간 도심복합사업’까지 제안하면서 공공 주도 개발 추진 동력은 더욱 약해질 전망이다. 민간 도심복합사업은 신탁·리츠(부동산투자회사) 등 민간 전문기관이 시행하는 방식이다. 앞으로 공공이 시행하는 도심복합사업에만 부여했던 도시건축 특례, 절차 간소화, 세제 혜택 등의 특례를 민간사업자에게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도심복합사업은 공공 주도로만 진행돼 왔다. 국토부는 내년 하반기 중 민간 도심복합 시범사업 후보 지역을 선정하고 본격적인 사업을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정부는 동의율 30%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이르면 12월 후보지를 철회할 방침이다. 도심 복합사업 후보지가 사업을 철회하기도, 민간 사업으로 전환하기도 쉬워진 셈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공공이 일방적으로 정비사업지역을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추진을 희망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구역지정을 확대하는 것은 시장수요에 맞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며 “통상 공공보다 민간 개발에 대한 선호가 높은 만큼 이탈하는 사업지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이미 본지구로 지정된 지역에서도 반발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되는 부분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