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파 예상 속 기업 및 국민들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
정치권은 ‘일단 이기고 보자’식 자세 일관하며 정쟁 삼매경···경제 논쟁은 ‘서민이냐 기업이냐’ 이분법 사고 못벗어나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적어도 내년까진 온 국민들이 고생을 좀 하게 될 것 같다. ‘경제는 좋았던 적이 없다’지만, 전문가들과 기업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재 나오는 전망들은 이 같은 자조 섞인 말로 넘겨버릴 수준이 아닌 듯하다. 물가가 치솟는데 금리도 오르고, 여기에 고환율까지 이어지면서 그야말로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잘나가던 반도체도 내년 상반기까지 물량이 쌓여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한다.

굳이 복잡한 이야기할 것 없이 장바구니 물가에서도 위기가 느껴지는 판국이다 요즘 돈 안 쓰고 버티는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물론 유행이라 하기엔 과장은 있지만,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현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런 가운데 기업들도 어떻게든 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거처럼 단순히 ‘비용 줄이기’에 매달리는 방식은 직원들 불만을 사고 부작용을 낳는 터라 한계가 있는 카드가 됐다. 그러다보니 코로나19 팬데믹 때부터 갖가지 생존 방식을 내놓으며 버티고 있다. 사업을 재편하는가 하면 고육지책으로 돈벌이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순환휴직을 하기도 한다.

돈 벌기도 힘들지만 이제 환경 기준들도 높아져서 이를 맞추기 위해 기술도 개발하고 어떻게 하면 피해를 보지 않을지 연구한다. 오너들은 강대국 패권전쟁 속 살아남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이 와중에 ‘2030 부산엑스포’ 유치에 힘을 보태기 위해 바쁘다.

그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점점 주머니를 닫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소비자 선택을 받을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지, 마케팅은 어떻게 할지, 허리띠 졸라매는 상황 속에 어떻게 하면 거래처를 잃지 않을지 고민하고 걱정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이렇게 모두가 고군분투 하는 가운데 국가적으로 가장 큰 결정권을 갖고 있고 국민들이 세금을 주고 고용한 정치인들의 행보를 보면 국민들은 한숨만 나온다. 오죽하면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가족들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도 우연히 스마트폰으로 포털 정치뉴스 제목들을 보게 되면 짜증이 밀려 온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정쟁이야 정치판의 기본조건이지만, 지난 5년 간 존중이라는 것이 아예 사라진 여야는 ‘일단 이기고 보자’ 자세만 남은 상태다. 부끄러움도 없어진 건지 잘못된 행동을 하다 걸려도 되레 큰소리부터 치고 본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하든 ‘내 편’들은 어차피 내 편을 들어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 환경이 복잡한데 경제나 산업을 이야기한다 하면 아직도 여전히 ‘기업이 먼저냐 서민이 먼저냐’, ‘환경이 먼저냐 기업이 먼저냐’와 같은 단순하고 감성적인 이분법 논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단순한 감성적 논쟁 속에서 얼마나 날카롭고 정교한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지 걱정이다.

국회 정무위는 이번 국감에서 ‘GOS 논란’을 빚은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MX사업부장)이 증인으로 채택했다. GOS 논란과 소비자 불만을 보면 노 사장이 증인으로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는 이야기가 삼성 안팎에서 나오지만, 증인 신청사유에 반도체 및 세탁기 파손 논란 사유까지 포함돼 논란이다. 삼성전자는 크게 3개 사업부로 나뉘는데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서로 다른 사업부 일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기엔 무리가 있다. 조금 과장하면 삼성라이온즈 관계자를 불러 삼성 썬더스 농구팀 일을 묻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27년 전인 1995년 베이징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우리나라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기업도 3류, 4류의 모습을 보인 경우가 많아 100% 공감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기업들은 세대교체를 이루며 변하려고 노력이라도 하는 모습이다. 이제 정치가 뭔가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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