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경영유의·개선사항 총 25건 지적

서울 서대문구 NH농협생명 본점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NH농협생명이 농업작업 중 재해를 보장하는 상품인 농업인안전보험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고 금융당국이 지적했다. 금융권은 농협생명이 ‘농민을 위한다’는 농협의 핵심 가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금융당국은 또 농협생명이 내년 도입할 새 회계기준(IFRS17)에 대한 대비를 부실하게 한 점도 꼬집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농협생명에 대한 종합검사 결과 경영유의 사항 6건, 개선 사항 19건을 부과했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은 농업인안전보험과 관련된 개선 사항이다. 농업인안전보험은 농업 관련 작업으로 인해 농업인에게 발생한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을 보상해 농업경영 및 생활안정을 지원해주는 정책 보험 상품이다. 

◇ 농업인안전보험 보험금 지급 ‘인색’···"상품 취지 맞지 않아” 

금감원은 농업인안전보험 상품의 운영이 부실하게 이뤄져 보험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농협생명은 농업 작업 범위에 대한 인정기준과 이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지침을 마련하지 않았다. 또 해당 보험 상품의 보험 기간을 1년 만기로 운영한 점도 문제로 꼽혔다. 만기가 짧다 보니 농업 작업 중 재해사고로 치료하는 동안 보험 기간이 종료되는 경우엔 사망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농업인안전보험에 대한 보험금 지급 심사 업무가 미흡하게 처리된 점도 꼬집었다. 보험사 입장에 유리한 쪽으로 심사를 진행해 ‘농업작업 중 발생한 안전재해를 폭넓게 보장한다’는 농업인안전보험 상품 출시 취지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이 문제로 지적한 사례는 피보험자가 농업작업에서 발생한 재해사고로 입원 중 건강상태가 악화돼 사망하는 경우다. 농협생명은 사망진단서에 직접 사인이 병사로 기재돼 있거나 피보험자에게 기저질환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재해와 사망간의 인과성을 따로 판단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피보험자의 입장에선 보험금을 받기가 그만큼 더 어렵다. 

농협생명이 질병보험금 지급심사 과정에서 의료자문을 요청하는 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문제가 되는 질병이 피보험자가 청구한 질병에 해당하는지 의사에게 물을 때 질문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질문이 자세하지 않다보니 의사도 포괄적인 내용을 담은 답변을 하는 사례가 발생했단 것이다. 자문 결과가 모호하면 그만큼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는 쪽으로 판단을 내릴 여지가 커진다. 또 일부 진단의 경우 이에 대한 질병분류코드별 보험금 지급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지급심사 결과가 일관되지 않은 점도 문제가 됐다.

금감원의 지적을 받자 농협생명은 농업인안전보험 보장범위를 넓힌 신상품 ‘농업인NH안전보험’을 부랴부랴 출시했다. 농협생명 관계자는 “농업인안전보험의 경우 일반 상품과 달리 보장 범위 자체가 정해졌기에 보험금 지급을 보수적으로 했다는 평가가 내려진 것 같다”며 “최근 신상품 출시에서 나타나듯이 보장범위를 점차 늘리는 것이 농협생명의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 새 회계제도 준비도 미흡···LAT제도 운영 ‘허술’

금감원은 농협생명이 새 회계제도(IFRS17) 도입에 대한 대응도 허술하게 한 점을 문제 삼았다. 보험사로 하여금 IFRS17 전환을 미리 준비하도록 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시행한 부채적정성평가(LAT) 제도를 미흡하게 운영했단 지적이다. LAT 제도는 보험사들이 IFRS17와 유사한 방식으로 부채를 시가 평가한 LAT평가액을 산출하게 하고, 실제 인식하는 부채를 이보다 더 많이 하도록 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그런데 부채를 시가평가할 때는 보험료수입과 보험금 지급 등 미래에 들어오고 나갈 현금흐름을 가정하는 작업이 수반된다. 이에 향후 발생할 현금흐름에 대한 예측을 최대한 정확하게 해야 한다. 예상한 현금흐름 규모가 실제보다 지나치게 작으면 LAT평가액이 적은 액수로 산출되며, 보험사는 부채를 적게 인식해 IFRS17에 대한 대비를 허술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농협생명이 미래 현금흐름의 예측치가 실제보다 크게 적은데도 이를 개선할 방안을 마련하지 않았단 점이다. 구체적으로 농협생명이 2018년 LAT평가액을 산출할 때 2019년에 발생할 것으로 가정한 현금흐름 규모와 2019년 실제로 발생한 현금흐름 액수 차이는 컸다. 2019년 LAT평가액을 산출할 때도 마찬가지로 2020년 현금흐름 예상치가 실제보다 작았다. 하지만 농협생명은 이를 반영해 현금흐름 산출 방식을 바꾸는 '사후검증업무'가 이뤄지지 않았다.  

농협생명 관계자는 "LAT제도는 최근 몇년 간 계속 기준이 강화됐다"라며 "강화된 기준에 맞게 LAT평가액을 산출하고 있기에 현재 LAT 제도 운영엔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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