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금융지주 회장은 출석 피해
‘은행장 망신주기’ 지적도

왼쪽부터 이재근 KB국민은행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박성호 하나은행장, 이원덕 우리은행장, 권준학 NH농협은행장 / 사진=각 사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올해 국정감사에서 대규모 횡령 사태와 이상 해외송금 등에 관한 질의를 받기 위해 5대 시중은행장들이 증인으로 출석할 전망이다. 당초 소환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던 금융지주 회장들은 해외 일정을 이유로 국감 참석을 피하게 됐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달 11일 열리는 금융감독원 국감에서 5대 시중은행장을 모두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재근 KB국민은행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박성호 하나은행장, 이원덕 우리은행장, 권준학 NH농협은행장 등이 참석 예정이다. 

당초 금융지주 회장이 소환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최근 대규모 횡령과 이상 해외송금 사태로 은행권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각 시중은행이 소속된 그룹의 수장을 증인으로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금융지주 회장들은 다음 달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 참석하기로 하면서 은행장들이 국감장에 서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에 업계에선 금융지주 회장들이 국감 출석을 회피하기 위해 총회 일정을 잡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내 대형 시중은행의 지분은 모기업인 5대 금융지주들이 100% 소유하고 있다. 이에 은행권의 문제에 대해선 은행장이 아니라 실질적인 최고 권한자인 금융지주 회장에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은행장들은 국감서 금융지주 회장을 대신해 횡령과 이상 외환송금에 대한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을 전망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15개 은행에서는 2017년부터 올해까지 약 6년 간 98건, 총 911억7900만원 규모의 횡령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올해만 722억6700만원(15건) 규모의 횡령사고가 발생했다. 6년 동안 가장 큰 금액이다. 반면 은행에서 발생한 횡령사고의 회수액은 6년간 77억9600만원에 그쳤다.

은행권의 이상 외환송금 규모는 이미 10조원을 넘어섰다. 특히 문제가 된 외환거래는 대부분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와 연관돼 있어 금융당국은 검사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당국이 우려하는 부분은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해 환차익을 노린 조직적 범죄일 수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국내외 ‘검은 돈’이나 북한이 불법 취득한 가상자산이 세탁된 경우 국제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중은행은 부실한 내부통제로 인해 이번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금융당국은 외국환거래법 등 관련법에 따라 은행이 외환 송금과 수령 과정에서 서류 검증 등을 통해 관련 업체의 적합성을 살폈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최소한 설립된지 얼마 안된 회사가 대규모 송금을 요청할 때 은행들이 업체의 적절성 등을 감지라도 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상 거래가 장기에 걸쳐) 첫 번째가 아니고 두 번째, 세 번째 있었으면 그때쯤에는 은행에 뭔가 빨간불이 들어왔어야 되는 것 아니냐"며 "외환거래 과정에서 외환거래법 의무 규정 등 본질을 훼손하지 않았는지 점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선 국감에서 매년 은행장을 소환하는 것은 일종의 ‘망신주기’란 비판이 나온다. 실질적인 대책을 논의하기보다 최고경영자(CEO)를 증언대에 세워 호통치기와 망신주기로 이목을 끄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은행을 향한 여론이 좋지 않은 만큼 은행장들이 국감에서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별 탈 없이 넘어가기를 바라는 상황이기에 의원들의 호통치기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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