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29일 재건축 부담금 합리화 방안 발표
84개 부담금 통보 단지 중 38개 단지 ‘면제’
강남 등 서울 재건축 단지 효과 미미
“공급 활성화 기대 어려워···폐지 논의 필요”

/ 그래픽=시사저널e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정부가 서울 재건축 사업의 최대 걸림돌로 꼽히던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에 대한 완화 방안을 내놨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 하다. 재건축 초과이익이 크지 않은 지방이나 수도권 외곽을 제외하면 이번 제도 개선으로 인한 공급 효과가 미미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민간 중심의 주택 공급 확대라는 정부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재건축 부담금 부과율을 대폭 낮추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면제액 기준 ‘3000만→1억원’ 확대

29일 국토교통부는 재초환을 완화하는 내용이 담긴 ‘재건축 부담금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재초환은 재건축 사업으로 조합원 1인당 평균 개발이익이 3000만원을 넘으면 초과 이익의 10~50%를 국가가 현금으로 환수하는 제도다. 재건축 조합설립 추진위원회 승인일부터 준공되는 종료 시점까지 오른 집값에서 건축비 등 개발비용과 평균 집값 상승분을 뺀 금액에 부과한다. 이 제도는 과다한 이익 환수를 위해 2006년 도입됐으나 부동산 침체기 등을 거치며 두 차례 유예를 거쳐 올해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집값 급등으로 인해 조합원 1인당 부담금이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에 이르는 단지가 속출하면서 주민들의 반발이 컸다. 올해 7월 기준 재건축 예정 부담금이 통보된 곳은 전국 85곳에 달한다. 과다한 부담금으로 재건축 사업이 지연되거나 보류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도심 주택 공급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부터 제도 개선을 예고했다.

방안에 따르면 재건축 부담금이 면제되는 초과이익 금액은 현행 3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된다. 재건축 초과이익이 3000만원 이상으로 부담금 부과통보를 받았던 단지들은 초과이익이 1억원 이하일 경우 기존 통보된 부담금을 전액 면제받게 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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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과율의 기준이 되는 부과구간폭도 기존 2000만원 단위에서 7000만원 단위로 늘어난다. 1억원 초과~1억7000만원 이하는 부과율 10%가 적용되고 ▲1억7000만원 초과~2억4000만원 이하 20%, ▲2억4000만원 초과~3억1000만원 이하 30% ▲3억1000만원 초과~3억8000만원 이하 40% ▲3억8000만원 초과는 50%까지 부과된다.

◆부담금 산정 시기 ‘추진위 승인→조합설립’···장기 보유 1주택자 최대 50% 감면

부담금 산정 기준 시점도 늦춰진다. 정부는 초과이익을 계산하는 기준점이 되는 재건축 사업의 시작 시점을 ‘추진위원회 승인일’에서 ‘조합설립 인가일’로 바꾸기로 했다. 초과이익 계산 기간이 짧아지기 때문에 부담금도 줄어들게 된다. 정비사업의 권리∙의무를 부여받는 실질적인 사업 주체는 조합이고, 부담금 납부 주체도 추진위원회가 아닌 조합인 점을 감안했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재건축 아파트를 장기간 보유한 1주택자에겐 보유기간에 따라 최대 50%까지 감면 혜택을 주기로 했다. 해당 주택을 준공시점으로부터 역산해 6년 이상 보유하면 부담금이 10% 감면되고 ▲7년 이상 20% ▲8년 이상 30% ▲9년 이상 40% ▲10년 이상 50% 등의 혜택을 받는다. 다만 준공시점에도 1가구 1주택자여야 하고 보유기간은 1가구 1주택자로서 해당 주택을 보유한 기간만 포함한다. 이 기간 중 또 다른 주택을 취득했을 경우 감면 혜택을 볼 수 없다는 의미다.

또 현금 여력이 없는 만 60세 이상 고령자에 대해선 상속∙증여∙양도 등 소유권 이전 시점 전까지 납부를 유예한다. 공공임대나 공공분양으로 주택을 매각하면 이 대금을 초과이익에서 제외하는 인센티브도 주기로 했다.

/ 자료=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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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개선 방안을 적용하면 이 중 38곳은 부담금이 면제될 것으로 국토부는 추정했다. 기존에 부담금이 적었던 단지일수록 감면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3000만원 초과~1억원 미만 부과 단지는 20개 단지에서 9개 단지로, 1000만원 초과~3000만원 미만 부과 단지도 15개 단지에서 8개 단지로 줄어든다. 1000만원 미만 부과 단지는 기존 30개에서 62개로 늘며, 이중 61.2%인 38개 단지는 부담금이 완전 면제된다.

◆강남 등 주요 재건축, 개선 이후에도 부담금 수억원···“재초환 폐지 고려해야”

다만 재초환 폐지를 주장해온 기존 강남과 용산 등 주요 재건축 단지 주민들의 반발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에 따르면 새로운 산정기준에 따라 1억원 초과 부과금이 통보될 단지는 84개 단지 중 5곳으로, 강남 주요 고가단지와 용산 일부 단지가 여기에 해당된다. 현재 서울 용산구 한강맨션은 7억7000만원, 성동구 장미 4억7700만원, 강남구 개포한신 4억5000만원, 서초구 반포3주구 4억200만원 등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들은 수억원의 부담금 예정액을 통보받았다. 

일부 재건축 조합은 개편안 발표 전부터 부담금 감면 폭과 감면 대상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전국 73개 조합이 뭉친 전국재건축정비사업조합연대(재건축연대)는 이달 22일 국토부에 “재초환 개선 정도에 따라 필요시 단체행동에 나서겠다”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들은 재건축 부담금 부과율 상한을 기존 50%에서 25%로 낮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개발이익이 큰 단지들은 부담금이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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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선 재건축 초과이익이 크지 않은 지방이나 수도권 외곽을 제외하면 이번 제도 개선으로 인한 공급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부담금이 많은 단지는 대부분 강남에 위치한다”며 “재초환을 완화한 이유도 강남권 재건축을 재개해 공급을 활성화하자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개선 방안을 적용해도 부담금이 적지 않은 만큼 주민들의 불만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며 “서울의 경우 재건축 사업을 통한 공급 확대가 더딜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합마다 희비가 엇갈려 더 큰 조세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재건축 단지 중 부담금이 가장 많은 한강맨션의 경우 추진위원회 승인 시점은 2003년, 조합설립인가는 2017년으로 기간 차이가 큼에도 불구하고 제도 개선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이다. 반면 성동구 성수 장미 아파트는 2019년 조합설립인가를 받아 조정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조합은 개시 시점 조정으로 부담금이 조합원당 평균 2억원 가량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발표가 재초환 문제로 지지부진한 재건축 추진 단지에 일부 숨통 효과를 주겠지만 실제 속도가 나기 위해서는 제도 자체가 폐지돼야 한다고 봤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재초환은 재건축을 억제하려 만든 제도이기 때문에 민간 정비사업을 활성화시켜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지금 시기에선 맞지 않은 제도다”며 “재초환은 완화 강도가 약하면 정비사업이 탄력받기 어렵고, 크게 손대면 정비사업 추진에 긍정 요인으로 작용하는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부터라도 장기적으로 재초환 자체의 폐지까지 포함한 제도 개선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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