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보험과 벌였던 美호텔 인수무산 후 계약금 반환 소송전과 ‘닮은꼴’
입금계좌·중재기관·정치적 중립성 등 달라···승소해도 평판 훼손은 불가피
[시사저널e=이승용 기자]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AC)에 브룩필드자산운용을 대상으로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매입을 위해 납입했던 이행보증금 2000억원을 반환해달라는 중재를 신청했다.
이번 중재 신청을 놓고 지난 2020년 중국 안방보험(현 다자보험)과 벌였던 미국 호텔 인수무산에 따른 계약금 반환 소송전이 연상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당시 미래에셋은 미국 법원에서 1년 반 넘게 진행된 소송전에서 결국 승소하고 안방보험으로부터 계약금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이번 IFC딜 분쟁은 당시와 다른 점도 있어 쉽사리 결과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미래에셋이 승소하더라도 글로벌 회사들과 합의한 대형 부동산 거래가 연이어 무산되고 분쟁을 벌인다는 점에서 향후 글로벌 부동산리그에서 평판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 IFC 인수무산 소송전, 中 안방보험 소송전 ‘데자뷔’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브룩필드를 상대로 이행보증금 2000억원을 반환받기 위해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에 제소한 배경에는 지난 안방보험과 벌였던 소송전처럼 계약서상 보증금 전액을 반환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당시 안방보험과 미국 호텔 15개 인수무산 책임을 놓고 벌였던 소송전과 이번 중재신청 모두 미래에셋 측이 부동산을 매입하기 위해 일부 금액을 선입금했다가 최종적으로 인수가 무산되자 선입금한 자금 회수를 위해 분쟁을 벌인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앞서 미래에셋은 지난 2019년 9월 중국 안방보험으로부터 미국 5성급 고급 호텔 15개를 58억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계약금 5억8000만달러를 입금했다. 당초 계약은 2020년 4월 종결될 예정이었으나 안방보험은 미래에셋이 잔금 납부를 하지 않는다며 2020년 4월27일 델라웨어 형평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미래에셋은 ‘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하며 계약금 반환 소송 등 응소 및 반소를 제기했다.
지리한 공방 끝에 2020년 12월 미국 1심 법원은 계약 해지의 모든 책임이 안방보험에 있다며 미래에셋의 손을 들어줬다. 안방보험은 항소했지만 지난해 12월 델라웨어주 대법원도 미래에셋 손을 들어주며 계약금 5억8000만달러와 이자, 거래 관련 지출 및 변호사비용 등을 모두 안방보험이 지급하라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이번 IFC딜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IFC는 이명박 서울시장 당시 서울을 동북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미국계 종합금융회사인 AIG가 여의도 옛 중소기업전시장 부지에 건물을 짓고 99년 임대한 이후 서울시로 기부채납 하는 조건으로 건립됐다. 이후 캐나다 대체자산 전문운용사 브룩필드가 2016년 2조5500억원을 들여 IFC를 매입했다.
브룩필드자산운용은 지난해말 이스트딜시큐어드를 매각주관사로 선정하고 IFC 매각을 추진했고 올해 5월 미래에셋은 이지스자산운용·신세계프라퍼티 컨소시엄을 제치고 최종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인수대금은 4조1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인수를 위한 미래에셋측 펀드를 운용하게 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브룩필드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이행보증금 2000억원을 납입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리츠와 부동산펀드를 활용해 2조원을 조달하고 대출 2조1000억원을 받는 사업구조를 구상했다. 하지만 투자자 모집에 난항을 겪었고 국토교통부는 IFC인수를 위해 만든 ‘세이지리츠’의 대출 비중이 너무 높다는 이유로 리츠 승인을 불허했다. 리츠 승인이 무산되면서 미래에셋자산운용과 브룩필드는 여러 대안을 모색했지만 결국 브룩필드는 최종적으로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보증금 2000억원 반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브룩필드는 거부했고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에 이행보증금을 반환해달라는 중재 신청을 하게 됐다.
◇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안방보험과 벌였던 미국 호텔 관련 소송전과 이번 IFC딜 분쟁은 다소 다른 점도 존재한다.
우선 안방보험과 계약 당시 미래에셋은 계약금 5억8000만달러를 에스크로 계좌에 입금했다. 이를 통해 소송이 끝나기 전까지 미래에셋과 안방보험 양측은 모두 계약금을 가져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IFC딜에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에스크로 계좌가 아닌 브룩필드측 계좌에 이미 이행보증금 2000억원을 입금한 상태다.
분쟁 판단 기관도 다르다. 안방보험과 소송전은 미국 법원이 결정했다. 반면 이번 IFC딜은 싱가포르중재센터에서 결정된다.
미국법원에서 벌였던 소송은 2심제로 미래에셋은 안방보험과 1심과 2심 두 번에 걸쳐서 소송을 진행해야 했다. 2020년 5월에 시작된 재판은 2021년 12월에야 끝났다. 모든 판단의 기준은 미국 법률이었다.
반면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의 중재는 단심제다. 신속절차도 있는 등 처리속도도 빠르다. 김상찬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14년 게재한 논문 ‘싱가포르 국제중재제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의 분쟁 판단은 대부분 유엔 국제무역법 위원회의 국제상사중재 모델법을 기초로 작성된 싱가포르 국제중재법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이번 IFC딜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번 IFC딜의 경우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가 한국법에 기초해 판단하도록 하는 내용이 계약서에 담겨있다”고 전했다.
정치적 중립성도 차이가 있다. 미래에셋이 안방보험과 벌였던 소송전은 미국 법원에서 진행됐는데 미국과 중국의 갈등 관계 덕분에 미래에셋이 판결에서 이득을 봤다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반면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는 국제사회에서 신뢰 구축을 위해 중립성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국제중재법이 적용되는 중재에 대해 법원의 개입이 법률상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는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국제중재기관 선호도조사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 승소해도 글로벌 평판 악화···후폭풍불까
이번 분쟁의 최대 관건은 결국 계약서 세부조항 내용에 달렸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IFC의 매입을 위해 설립한 리츠가 우선협상기간까지 영업인가를 받지 못할 경우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는 조건이 계약서에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브룩필드 측은 리츠 인가가 나지 않은 것은 미래에셋자산운용에 책임이 있다며 보증금 반환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이행보증금를 돌려받더라도 전액을 다 돌려받지는 못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분쟁 승리 여부와 무관하게 미래에셋자산운용이 향후 글로벌 부동산리그에서 평판이 악화될 것이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한 국내 증권사 부동산 부문 최고위 임원은 “브룩필드가 글로벌 부동산리그에서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미래에셋과 관련해 안 좋은 소리를 하고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글로벌 부동산리그는 폐쇄적인 성격이 강한데 안방보험에 이어 브룩필드까지 비슷한 분쟁이 벌어지면서 향후 미래에셋이 중요한 딜을 따내기가 쉽지 않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