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압박에 대출금리 상승 억제해온 은행
조달비용 부담 커져 대출 금리 다시 올릴듯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미국 중앙은행 연준비제도(Fed·연준)이 세 번 연속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면서 국내 은행의 예대금리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는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압력으로 대출금리 상승을 억제했지만 조달비용 부담이 커지면 대출금리를 빠르게 올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 연준은 이날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치고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했다. 6월, 7월에 이어 세 번 연속 자이언트 스텝이다. 이번 결정으로 미국의 기준금리는 2.25~2.50%에서 3.00~3.25%로 상승해 지난 2008년 1월 이후 14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연준은 향후에도 금리 인상 속도를 계속 낼 것을 시사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정례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물가상승률이 (연준 목표치인) 2%를 향해 내려가고 있다고 매우 확신하기 전에는 금리인하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FOMC 위원들의 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점도표에서도 올해 말 금리 수준은 4.4%로, 내년 말 금리 수준은 4.6%로 각각 조정됐다. 지난 6월 점도표의 3.4%, 3.8%에서 대폭 상향된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앞으로 남은 두 번(11월·12월)의 FOMC에서도 '빅 스텝(0.5%포인트 인상)'과 '자이언트 스텝'이 각각 단행될 가능성이 크다.
연준이 긴축을 더 강화하기로 하면서 한국은행도 더 큰 폭으로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다음달 12일 열리는 통화정책방향결정회의에서 ‘빅스텝’(한 번에 0.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이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다. 이번 FOMC로 미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0.75%포인트 더 높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금리 인상 속도를 내야하기 때문이다.
은행권에선 기준금리 상승으로 예대금리차가 더 벌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올해 금융당국이 은행의 과도한 이자장사에 대해 문제 삼자 은행들은 앞다퉈 대출금리를 하향조정했다. 금융권에선 은행이 당국의 눈치를 보고 대출 금리를 급하게 내린다는 것이 주된 평가였다. 동시에 은행은 예금금리도 즉각 올렸다. 이에 은행의 예대금리차는 축소됐다.
하지만 기준금리가 빠르게 오르면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다시 크게 올릴 가능성이 높다. 조달비용이 불어나면 은행 입장에선 마진을 최소화해 대출을 내주는데도 한계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특히 예금금리도 당국의 요구로 크게 올렸기에 기준금리 상승으로 인한 비용 압박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지난 7월 금융당국의 계획대로 은행권의 신규취급액 기준 예대금리차가 공시된 후 예대금리차는 오히려 더 확대됐다. 지난달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 예대금리차는 직전 월 대비 1%포인트 내외로 늘었다. 특히 농협은행은 0.36%포인트 급증했다.
조달비용이 늘어난 결과다. 은행의 조달비용지수이며 대출상품 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 금리는 계속 오름세다. 신규취급액기준 코픽스는 6월 2.38%에서 7월 2.9%, 8월에는 2.96%까지 올랐다. 연준이 금리를 크게 올린 만큼 이달 코픽스도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예대금리차가 다시 벌어지면 금융당국이 추진한 예대금리차 공시 제도에 대한 의문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대출금리가 급등하면 대출을 받으려하는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공시 제도에 대한 효용이 크게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최근 은행권에선 예대금리차 공시가 각 은행의 사정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불만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보통 금리 상승기에 예대금리차는 확대되는 경향이 크다”라며 “대출금리는 시중금리의 영향을 받는 은행채 금리에 따라 수시로 조정되지만 예금금리는 기준금리에 따라 조정되기에 이 시간차로 인해 예대금리차가 벌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