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규 한국팹리스산업협회장 인터뷰
“산업 경쟁력 강화 위해 ‘K-팹리스 성장 지원 사업’ 필요”
“AI 반도체 개발·파운드리 및 학계와 상생에 도움될 것”

이서규 한국팹리스산업협회장(픽셀플러스 대표)가 시사저널e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호길 기자
이서규 한국팹리스산업협회장(픽셀플러스 대표). /사진=이호길 기자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TSMC가 글로벌 파운드리 1위 기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유수의 팹리스 회사에서 검증된 반도체 설계자산(IP)을 다수 확보했기 때문이다. 팹리스 산업 성장 없이 시스템반도체 산업 발전도 불가능하다. 연구개발(R&D)과 시제품 개발, 선도기술 연구를 뒷받침하는 ‘K-팹리스 성장 지원 사업’을 추진해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 확보에 나서겠다”

이서규 한국팹리스산업협회장(픽셀플러스 사장)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 70% 이상 비중을 차지하는 시스템반도체 역량을 키우려면 팹리스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팹리스 설계 인력 양성과 생태계 조성 방안이 핵심이라고 역설했다.

삼성전자가 TSMC와 함께 10나노미터(nm) 이하 파운드리 미세공정 제조 역량을 보유한 기업인만큼 팹리스 산업에 대한 지원이 이뤄진다면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설계와 제조의 시너지 효과가 창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협회장은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K-팹리스 성장 지원 사업을 제안했다. 이는 시스템온칩(SoC) 플랫폼과 시제품 제작을 위한 멀티 프로젝트 웨이퍼(MPW) 지원과 대학의 실질적 R&D 역량 강화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는 개념이다. 이를 통해 IP 구축과 제품화, 차세대 기술 개발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팹리스산업협회는 국내 반도체 정책의 무게 중심이 제조 기반으로 기울어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달 출범한 조직이다. 105개 팹리스 기업들로 구성됐으며 업계 목소리를 국회와 정부에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이 협회장은 지난달 창립총회에서 취임사를 통해 ▲설계 전문 인력 양성 ▲국책과제 R&D 사업 기획 단계에서 민간기업 참여 확대 ▲완성품업체와 팹리스의 상호 교류 확대 ▲팹리스·파운드리 상생협의회 활성화 ▲인수합병(M&A) 활성화로 규모의 팹리스 업체 육성 ▲건강한 산업 생태계 조성 방안 등을 협회 6대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다음은 이 협회장과의 일문일답.

이서규 한국팹리스산업협회장. /사진=이호길 기자
이서규 한국팹리스산업협회장. /사진=이호길 기자

-팹리스산업협회 창립총회가 지난달에 개최됐는데, 활동에 돌입했나

아직 행정 절차가 진행 중인데, 활동을 위한 산업부 등록은 이달 중에 완료된다. 협회 사무실은 판교에 있는 공유 오피스에 마련했고, 협회 회원사들이 십시일반으로 펀딩에 나서 사무실 임대료와 상근 직원 채용을 위한 인건비를 확보할 예정이다. 최근 협회 이사회를 열어 운영 방향에 대한 컨센서스(의견 일치)를 형성했다. 내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협회 6대 추진 과제를 발표한 바 있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인력 양성이다. 반도체업계 전반에 인력난이 심각한데, 중견·중소기업이 대부분인 팹리스 업체들은 대부분 빈사 상태다. 우수한 인재가 있어야 기술 개발과 제품화가 가능하지만, 1년에 배출되는 설계 전문 인력은 100명 수준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 정부에서 여러 방면으로 반도체 인재 양성 방안을 발표하고 있으나 교육이 이뤄지고 인력이 나오기까지는 3~4년이 걸리기 때문에 지금 당장 구인난에 대응하기는 어렵다.

-설계 전문 인력을 충원할 수 있는 방안은 뭔가

카이스트의 반도체설계교육센터(IDEC)를 모델로 삼아 ‘마이크로 디그리’(단기 이수 과정) 학제 과정으로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최근에 IDEC에서 40명 정원의 수강생을 모집했는데, 320명 정도가 지원했다. 반도체 교육에 대한 수요는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 중급, 고급, 심화 과정이 4개월 단위로 나뉘어져 있어서 바이오나 화학공학과 출신 등 전자공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도 강의를 들을 수 있단 게 장점이다. ‘퓨전 엔지니어링’도 가능해 활성화가 필요하다.

이런 모델을 활용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반도체 설계 전문 인력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 반도체 아카데미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도체 계약학과 확대 등 중장기적 방안과 별도로 빠른 시간 안에 팹리스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본다.

-글로벌 팹리스 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은 1% 수준이다. 이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R&D를 위한 정부 국책사업에 업계 목소리가 많이 반영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형 팹리스 업체가 나오려면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을 만들어서 매출을 올린 뒤 납부한 세금을 R&D 지원에 투입하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한데, 지금은 국책과제 허들이 너무 높다. R&D도 실질적으로 양산과 제품화가 가능할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만, 지금은 이게 아니라 높은 기술적 수준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국책과제가 기업들의 매출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하는데, 실제로 이렇게 된 사례는 거의 없다. R&D와 제품 양산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연구 과정에서 양산 가능성에 포커스를 맞추고, 민간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이서규 한국팹리스산업협회장. /사진=이호길 기자
이서규 한국팹리스산업협회장. /사진=이호길 기자

-글로벌 시장에 퀄컴, 엔비디아, 미디어텍 등 쟁쟁한 기업들이 많다. 국내 업계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집중해야 하는 팹리스 영역은 어디라고 생각하나

자동차 시장이라고 본다. 자율주행차로 전환되면 전력반도체, 이미지센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이 많이 필요해져 차별화 포인트는 전장 시장이 될 수 있다. 로봇이나 인공지능(AI) 등으로 실생활에 파급되는 효과가 커져서 상당히 중요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별 기업의 신시장 개척 움직임과 함께 생태계 구축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 같다. 이를 위한 방안은

K-팹리스 성장 지원 사업이 필요하다. 고도화된 시스템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파운드리 기업 중 한 곳이 우리나라 회사라는 건 엄청난 기회다. 이 기회를 살려 R&D 지원, 시제품 개발 지원, 선도기술 연구 지원을 추진하는 총괄 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내용을 여러 단체에 제안하고 있는데, 반응이 긍정적이다. 1차 사업은 예산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내년에 바로 시작할 수 있다고 본다.

-제안하고 있는 K-팹리스 성장 지원 사업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R&D 지원 사업을 운영해 국내 팹리스 업체들의 특화 기술을 하나의 칩 안에 내장한 다목적 멀티 프로젝트 칩(MPC)를 만드는 것이다. 기업들마다 데이터 처리, 3D 이미지 구현, 보안 등에서 뛰어난 영역이 다를 텐데, 이 기능을 하나의 칩에 집어넣을 수 있다. 국내 파운드리 업체에는 14나노 이하 미세공정 기술력이 있기 때문에 인프라가 갖춰지면 제조가 가능하다. 팹리스 업체들의 특화 IP를 활용한 AI 기반 반도체를 만들면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시제품 개발 지원 사업은 MPW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지금은 파운드리 업체에만 MPW가 있어 개발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데, 팹리스 기업들이 MPW를 제작해서 디지털 제품은 2분기마다 1번, 아날로그 제품은 3분기마다 1번 만드는 방법이다. 이렇게 해야 IP를 많이 개발할 수 있고, 팹리스·파운드리 상생에도 도움이 된다.

선도기술 연구 지원 사업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대학의 연구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연구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뭔지 학교에 물어보면 설계 후 제품이 나올 때까지 웨이퍼 공정 과정이 6개월에서 8개월 소요되는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기업과 대학 간 공동 연구를 지원하고 MPW를 활성화해 공정 기간을 2~3개월로 줄이면 산업계와 학계가 상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 차원의 팹리스 지원 정책은 어떤 점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나

M&A 활성화 지원책이 필요하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팹리스 업체 M&A를 통해 체급을 키우는 일이 필요한데, 사실 기업마다 이해관계가 다르다 보니 쉽지 않은 문제다.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정부가 산업 육성 측면에서 모태펀드를 활용한 M&A 활성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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