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평생 할인 요구에 비용 부담은 결국 소비자 몫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완성차 업계에선 연례행사처럼 여름철 투쟁이 반복됐지만, 올해는 다른 모습이다. 국내 완성차 형님격인 현대자동차가 무분규로 가장 먼저 임단협을 마무리 지은 가운데 한국GM, 르노코리아도 무탈하게 협상을 마쳤다. 쌍용차는 지난해 임단협 주기를 3년으로 조정해 올해는 교섭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아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당초 기아도 현대차를 따라 임단협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으나, 막판에 변수가 생겼다. 노사는 임금이나 성과급 부분에선 합의를 이뤘으나 ‘평생 사원증’ 제도에서 이견이 발생했다.

기아는 25년 이상 근무한 퇴직자에게 평생 사원증을 지급하고, 차량 가격을 할인해 주고 있다. 퇴직한 이후에도 평생 동안 기아 차량을 구매시 2년마다 30%를 깎아준다.

이번 합의안에선 이 제도를 축소하기로 했다. 차량 구매시 할인 횟수를 2년 주기에서 3년으로 늘리고, 연령 대상도 평생에서 75세로 제한하기로 했다. 할인율도 30%에서 25%로 낮췄다. 고령 운전자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대신 만 60세 임금을 59세 기본급의 90%에서 95%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노조 반발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할인 혜택 축소에 노조 절반 이상이 딴지를 걸었다. 조합원 중 절반 이상이 50세를 넘는 가운데, 퇴직 후 혜택 축소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진 후 소비자들 사이에선 허탈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한 네티즌은 “직원들에게 평생 할인해 준다는 기업은 들어본 적이 없다”며 “차 값이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니고, 그 돈은 결국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게 아니냐”고 말했다.

또 “그럴거면 기아 차를 오래 탄 사람도 평생 서비스 할인 혜택을 제공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할인 혜택이 30%에 달하는 만큼 일명 ‘차테크’가 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요즘처럼 중고차와 신차 가격이 차이가 없는 가운데, 2년마다 30% 할인을 받아 신차를 구매하고 차를 되팔아도 충분한 이익이 남는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차 가격이 매년 올라 소비자 부담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아 노조의 평생 할인 요구는 고깝게 보일 수도 있다.

이번 기아 노조 요구안은 소비자들 뿐 아니라, 젊은 세대 직원들에게도 반발을 사고 있다.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25년 이상 근속자들에게만 주는 혜택을, 그것도 퇴직 후에나 받을 수 있는 혜택 때문에 당장의 성과급을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 완성차 노조는 고액연봉을 받는 ‘철밥통’, ‘귀족노조’라 불리며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오랜 기간 쥐고 있던 기득권, 혜택을 손에서 놓기 싫은 것은 당연하다. 다만 이제는 주위를 둘러보고 꼭 쥐고 있는 주먹에서 힘을 풀 때가 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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