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자체 5% 위법 실태 발표···논란 증폭에 신재생 산업 위축 가능성
“원전·신재생 균형 바람직···에너지원 다양화·국산화·국내시장 형성 필요”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최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 비리가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새정부가 원전 중요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이번 위법 사례까지 드러나면서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위축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에너지 정책에 있어 원전과 신재생에너지의 균형이 중요하단 지적을 내놓는다. 우리 실정에 맞는 신재생에너지를 고민하고 국산화 등 국내시장 형성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단 조언도 나온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226개 지방자치단체 중 12곳에 대한 전력산업기반기금사업 운영실태를 표본 조사한 결과 부당사례가 2267건 적발됐다. 액수로는 2616억원 규모다.
전력산업기반기금사업은 신재생에너지 보급,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 전력 연구개발 사업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최근 5년간 약 12조원이 투입됐다. 이번 조사 결과 신재생에너지 금융지원사업 위법·부적정 대출이 1406건(1847억원), 보조금 위법·부당 집행이 845건(583억원), 입찰 담합이 16건(186억원) 적발됐다.
◇부당대출·무등록업체 계약·입찰담합···5% 표본조사서 2616억원 부당사용 적발
적발 사례를 보면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한 대출 집행과정에서 허위세금 계산서를 이용한 부당대출이나 무등록 업체와 계약을 집행하는 수법이 동원됐다. 발전 시공업체인 A사는 B발전사업자에게 실제보다 금액을 부풀린 세금계산서를 발급해 금융기관에서 과다한 대출금을 받게 한 후 이를 취소하거나 축소 재발급하는 방식으로 4개 지자체에서 15개 시설 18억원을 부적정하게 대출받았다.
전기공사업 무등록업체 C사는 D발전사업자와 E태양광발전소 공사계약을 불법으로 맺고 한국에너지공단에 금융지원을 신청해 자격을 받은 후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금 5억원을 부당 수령했다.
입찰담합이 의심되는 사례도 있었다. F지자체는 약 5억원의 태양광을 조달 구매하면서 당초 구매요구서와 다른 물품이 들어왔는데도 적정한 것으로 납품검사와 설치를 진행했다. 이 지자체는 물품구매시 1개 업체만 생산하는 사양으로 조달구매를 신청해 해당업체가 선정되게 한 후 실제 설치는 구매요구서와 다른 물품을 납품받아 설치하고 검수했다.
이번 점검은 전국 기초단체중 약 5%만 표본으로 이뤄졌음에도 점검 대상 사업비 약 2조1000억원 중 2616억원이 부적절하게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태양광 지원사업의 경우 전체 사업 건수 중 17%가 법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무조정실 측은 “이번에 적발된 것들은 사안에 따라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고, 부당 지원금에 대해서는 환수조치하도록 할 예정”이라며 “앞으로 조사 대상기관을 전국으로 확대해 추가점검을 실시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조사 대상을 전국지자체로 확대하기로 하면서 신재생에너지 사업 부실 사례가 추가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또 이번에 적발된 사례는 주로 직전 문재인 정부 때 추진된 사업이라 국회에서도 여야간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조짐이다.
이날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한 대응방안을 묻는 여당 의원 질의가 나왔다. 이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 푼의 혈세라도 소중히 집행해야 한다”며 “수사 의뢰할 부분은 수사 의뢰하는 등 관련 당국과 협의해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재생E 위축 가능성···“에너지믹스 중요, 국산화·국내시장 형성 관심 필요”
현 정부가 이전 정부와 달리 신재생에너지보다는 원전 쪽에 정책 비중을 높이는 가운데 이번 위법 사례까지 적발되면서 태양광 발전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전체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 미국과 유럽 등 전세계적으로 탄소를 대량으로 저감하는 방안으로 원자력을 고려하는 추세이다. 다만, 원전 비중이 높아지면 폐기물 처리, 저장 등이 과제인데 최근 주목받는 소형모듈원전(SMR)을 적극 활용하면 이러한 문제가 완화될 수 있다.
하지만, 무작정 원전 비중을 높이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낮추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세계적으로 에너지 시장 내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원전에 집중한 나머지 신재생에너지를 간과하면 에너지시장의 큰 부분을 놓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신재생에너지 시장을 놓치지 않으려면 국산화와 다양화에 적극 나서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태양광 발전은 현재 대체로 최대 4시간 정도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풍력 발전은 바람 세기가 너무 강하거나 약하면 하기 어려운 간헐성의 문제가 있다.
김정인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신재생에너지는 비중은 적더라도 계절적 영향을 받지 않도록 다양화시켜야 한다. 유럽에서는 산림 목재를 이용한 바이오매스나 폐기물을 에너지화하는 산업이 유망한 시장 중 하나”라며 “에너지는 원전 아니면 신재생, 모 아니면 도란 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에너지믹스가 중요하다는 것은 에너지 안보나 탄소중립 모두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번 위법 사례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선 우리나라 특성에 맞는 신재생에너지 개발과 국산화를 위한 재정 및 기술 지원, 국내시장 형성에 정책적 관심을 가져야 한단 조언이다.
김 교수는 “태양광, 풍력 바이오, 음식물, 폐기물 등 우리나라 특성에 맞는 신재생에너지를 다양하게 개발하고 국산화에 대한 시장들이 뒷받침돼 줘야 한다”며 “국내 기술에 기반한 시장이 있어야 해외로 진출할 수 있기에 국내 부품 사용 의무화 같은 부분부터 잡아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