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부안보다 단순·엄격 평가·연내 입법 ‘목표’
확장재정 필요 인식 야당 설득 관건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정부가 급증한 나랏빚을 줄이기 위해 강력한 재정준칙을 도입하기로 했다. 재정준칙 적용 지표를 강화하고 법적 근거를 법률로 규정해 구속력을 높여 내년 예산안부터 적용한단 계획이다. 다만, 야당 내에서 현 상황에서 도입이 적절치 않단 시각이 있어 국회 논의과정에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획재정부는 13일 오전 재정준칙 도입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재정준칙은 국가채무와 재정적자 등 재정건전성 지표가 위험 수준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규범이다. 만약, 위험 수준을 넘으면 정부는 대책을 마련해 원래 수준으로 회복시켜야 한다.
◇ 관련규정 법제화해 내년 예산안부터 적용 계획
이번 재정준칙안은 재정 통제 강화와 기준 단순화, 법률 근거, 즉시 시행이란 큰 원칙을 제시했다. 관리지표에 있어 수지는 관리재정수지로 설정했다. 또 관리재정수지 적자 한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로 설정하되 국가채무비율이 60%를 초과할 경우 –2%로 축소토록 했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국가채무비율을 60% 이내로 관리하겠단 계획이다.
이를 두고 전 정부가 제시한 재정준칙보다 단순하면서도 엄격하단 평가가 나온다. 앞서 지난 2020년 당시 정부가 제시한 재정수지 적자 한도는 ‘(국가채무 비율/60%)*(통합재정수지/-3%)]≤1.0’이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재정수지는 단순히 정부가 거둬들인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기금을 차감한 관리재정수지가 있다”며 “관리재정수지를 재정준칙의 지표로 삼은 것은 사회보장성기금수지가 흑자가 나면서 재정수지가 다소 양호해 보이는 착시효과가 있단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경기 침체 등이 발생하면 예외적으로 재정준칙을 면제하겠단 계획이다. 다만, 예외사유가 사라지고난 뒤 편성하는 본 예산안부터 재정준칙을 다시 적용하고, 이를 위한 재정건전화 대책 수립도 의무화한다. 재정건전화대책은 국가재정운용계획에 포함해 국회에 제출한단 계획이다. 한도는 재정환경 변화에 맞춰 5년 마다 재검토한다.
정부는 재정준칙의 법적 근거를 시행령이 아닌 법률(국가재정법)로 규정하고 준칙 관리기준에 대한 국회 심사권을 보장하기로 했다. 제도 시행은 법안 통과 이후 처음 편성하는 예산안부터 적용한다.
정부는 이달 중 재정준칙 법제화를 위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이번 정기국회 논의를 거쳐 올해 안에 법제화를 마친단 계획이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내년 예산안부터 재정준칙이 적용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은 이날 주재한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지속적으로 재정준칙이 준수돼 안정적인 재정총량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재정준칙 법제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올 정기국회 내 조속히 입법화 될 수 있도록 국회와 긴밀하게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해묵은 과제’ 국회 논의 지지부진 가능성
재정준칙은 그동안 정부와 국회 내 해묵은 과제로 꼽힌다. 최근 수년간 확장적 재정운용으로 매년 100조원 수준의 재정적자가 발생하고 국가 채무도 빠르게 증가했다. 특히 정부 재정에 있어 별도 재원이 필요한 적자성 채무 증가세가 가파르다. 기재부는 적자성 채무가 지난해 597조원에서 2026년 866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그동안 재정당국을 중심으로 재정준칙 도입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특히 현 정부는 코로나 사태로 확장재정을 추진했던 전 정부와 달리 긴축재정, 재정건전성 등을 강조하며 재정준칙 법제화에 적극적인 입장이다.
전 정부는 지난 2020년 재정준칙 도입을 위한 법안을 발의했으나 한도식이 일반인이 알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기준이 느슨하단 지적 등이 제기되며 현재까지 국회에 계류돼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다수 의원들이 재정준칙 관련 법안을 발의했으나 최종적으로 법제화로 이어지진 못했다.
이번 정부의 재정준칙도 국회 문턱을 넘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안을 심사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내에서 이른바 부자감세 논란이 주요 현안이라 재정준칙 논의가 공전할 가능성이 높다. 또 야당 의원 상당수는 현 상황에서 재정준칙으로 대표되는 건전재정보다 확장재정이 필요하단 인식을 갖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기재위 관계자는 “지금 주된 관심사는 종합부동산세와 법인세 등 정부의 세제개편안”이라며 “재정준칙은 내용을 봐야 하겠지만 일단은 부자감세 문제가 우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다른 민주당 소속 기재위 관계자는 “큰 틀에 있어 재정준칙은 필요하다”며 “하지만 코로나19가 여전하고 고물가로 민생경제가 어려운 특수한 상황에서 재정준칙 기준에 일률적으로 맞춰 예산을 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국회가 재정준칙을 설계할 때 수치에 매몰되선 안된다는 조언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정준칙에 있어 단순히 총량으로 제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별사업이 경제적 타당성을 갖도록 만드는 게 더욱 중요하다”며 “총량을 지킨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타당성이 없는 사업을 해버리면 곤란하다. 타당성에 있어 우선순위를 고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예비타당성 조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재정준칙에 있어 부채, 재정확대 등 증가 폭에 대한 관리가 중요하단 인식을 가져야 한단 지적이다. 성 교수는 “예를 들어 국내총생산(GDP)의 몇 %면 괜찮단 식의 관점이 아니라 실제 증가폭이 어떻게 되는지를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며 “GDP의 몇 %면 문제없단 식으로 하다 보니 해당 %가 될 때까지는 그냥 늘려도 된단 식의 얘기가 나오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