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주관 실적, 지난해 총 규모 넘어서
산금채로 조달 비용 낮춰···사업 경쟁력 높아
국회 "수익사업 자제해야"···금융권 불만↑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산업은행이 지난해 부진했던 인수금융 실적을 올해 다시 끌어올리면서 시장의 불만이 커지는 분위기다. 산업은행은 지난 2019년부터 정책자금 조달 수단인 산업금융채권(산금채)를 활용해 인수금융 사업을 확대하면서 타 금융사의 불만을 키웠다. 국회도 지난해 산업은행이 지나치게 수익사업에 몰두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13일 더벨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산업은행의 올해 상반기 인수금융 주선 실적은 1조842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 실적(1조4496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시장 점유율도 크게 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산업은행의 인수금융 실적은 2019~2020년 동안 급증했다. 국회예산처에 따르면 산업은행의 2019년 인수금융 시장점유율은 12위에서 3위로 크게 뛰어올랐다. 인수금융 주선액(2조9850억원)과 대출액(1조5270억원) 모두 세 배 넘게 증가했다. 이듬해엔 코로나 사태로 주선 실적은 줄었지만, 점유율(11.1%)은 2위로 한 계단 더 뛰어올랐다. 하지만 작년은 실적이 크게 감소했고, 올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인수금융은 금융사가 인수합병(M&A)를 추진하는 기업에 자금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인수금융을 주관하는 금융사는 해당 기업에 대출을 제공하고 다른 투자자들의 자금을 끌어오는 역할도 한다. 주관사는 이러한 서비스의 대가로 이자이익과 수수료수입을 거둔다.
산업은행이 다시 인수금융 실적을 끌어올릴 수 있는 비결은 대출 금리가 낮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국가가 지급을 보증해주는 산금채를 발행해 다른 금융사 대비 자금을 싸게 끌어올 수 있다. 조달 비용이 낮은 만큼 대출 금리를 낮게 책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지난 8일 3년물 기준 산금채의 금리는 은행채(AAA) 대비 약 0.07%포인트 낮았다.
산업은행은 지난 2019년부터 높은 금리 경쟁력을 최대한 활용해 인수금융 시장 점유율 확대에 집중했다. '기업금융1실' 산하에 네트워크금융단을 신설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전까지는 자본시장부문 내 M&A컨설팅실에서 M&A 자문 및 금융주선 업무를 모두 수행했다. 하지만 새롭게 신설된 네트워크금융단이 인수금융을 전담하도록 조직개편을 단행한 것이다. 그 결과 시장 점유율 2위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자 국회가 제동을 걸었다. 국회예산처는 지난해 '2020회계연도 공공기관 결산'을 내고 산업은행의 인수금융 시장 점유율 상승에 대해 “민간과의 경합 가능성이 확대되는 측면이 있어 해당 자금 공급이 정책금융의 사용 목적에 적합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회예산처는 산업은행의 인수금융 사업이 ‘민간 공급이 어려운 분야에 집중한다’는 당초 방침과는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산업은행이 인수금융을 주선한 업체는 대부분 신용등급이 A2(높지 않은 위험) 이상이었다. 민간 영역에서 자금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는 기업에 인수금융을 제공한 셈이다. 금융권에선 산업은행의 작년 인수금융 사업이 부진하자 국회의 지적을 의식한 행보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시장 상황에 따라 인수금융 실적이 올라갔을 뿐 이를 위해 특별히 취한 정책은 없다”라며 “산업은행은 보통 다른 금융사와 대주단을 꾸려 인수자금을 제공하기에 주관 실적이 많다고 해서 산업은행만 대규모 이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이 다시 인수금융 사업 ‘드라이브’를 걸자 금융권의 불만도 커지는 모양새다. 특히 대형 시중은행이 난감해한다. 시중은행은 빅테크(대형정보기술 기업)의 공세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수금융, 부동산금융 등 투자금융(IB) 사업에 사활을 걸었다. IB는 전문 인력들의 지식과 네트워크로 이뤄지는 사업이기 때문에 빅테크가 비대면 거래로 쉽게 진출하기 어려운 분야다.
실제로 지난해 산업은행이 부진한 사이 KB국민은행이 치고 올라갔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주선 실적 1위까지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타 은행도 인수금융 실적을 늘리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올해 산업은행의 실적이 늘어나면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상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이 IB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산업은행이 인수금융 시장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라며 “금리 경쟁력이 산업은행 대비 약하다보니 시장 점유율을 늘리기가 더 어렵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