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인수·매각 과정서 특혜·조작 논란···한국 정부 ‘매각 지연’ 책임 확인
ISDS서 “인수 원천 무효” 왜 주장 안했나···제소 후 정부 대응에도 문제 제기
“이익 주체에게 책임 묻자” 주장까지···조속한 판정문 공개 요구 목소리 높아

/ 사진=연합뉴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우리 정부에게 3000억원 배상 책임을 인정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과 관련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적·법률적 책임을 따지기 위해서는 조속한 판정문 공개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판정은 미국계 사모펀드의 외환은행 ‘먹튀’(먹고 튀었다) 논란에서 시작됐다. 인수부터 매각까지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외환은행을 살 수도 없었던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사고, 그것을 되팔아 4조원이 넘는 차익을 남기고 떠났기 때문이다.

◇산업자본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특혜 의혹

먼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자격’에 대한 의혹이다. 1997년 정부는 외환위기로 국책은행인 외환은행이 부실화하자 여러 구제 노력 끝에 매각을 추진했다. 당시 인수 의향을 밝힌 곳이 론스타였다. 문제는 론스타가 금융자본이 아닌 산업자본이라는 데 있었다. 은행법은 금융자본만이 시중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는데, 산업자본인 론스타로서는 매각 대상은행이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되는 예외규정을 적용받아야만 했다.

그렇다면 외환은행은 부실은행으로 분류될 만큼 사정이 어려웠을까. 보통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BIS)이 8% 미만이면 부실은행으로 분류되는데, 당시 외환은행 내부 이사회에 보고된 BIS비율은 10%였다. 문제는 금융감독원에 보고된 외환은행의 BIS 비율이 6.16%로 뒤늦게 확인됐다는 점이다. 이미 금융감독위원회는 BIS 전망치 6.16%를 근거로 론스타의 주식 취득을 승인했고, 론스타는 외환은행 주식 50.5%를 주당 4245원, 모두 1조3800억원에 샀다.

2006년 뒤늦게 감사원은 외환은행이 인수 자격이 없는 론스타에 부적절하게 매각돼 ‘헐값 매각’이 이뤄졌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2003년 7월 서울 한 호텔에서 열린 이른바 ‘10인 회의’가 이를 주도했다고 보고 참석자였던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등 4명을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낮은 가격에 매각한) 부적절한 행위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엄격하게 봤을 때 배임 행위나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2010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는다.

◇외환은행 주가조작에도 불이익 없었던 매각

두 번째 의혹은 외환은행 매각(2012년)에 대한 논란이다. 론스타는 2005년 말부터 외환은행을 되팔려했는데 검찰 수사와 글로벌 금융위기, 외환은행 주가조작 사건 등으로 여러 차례 불발됐다. 론스타는 국민은행(2006년)과 외국계은행 HSBC(2007년)와 매매계약을 맺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세 번째 인수대상자는 하나금융(2010년)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외환카드 주가조작이 발목을 잡았다.

외환카드 주가조작은 2003년 11월 외환은행이 외환카드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외환은행이 감자(자본금을 줄이는 일)설을 퍼뜨려 외환카드 주가를 떨어뜨린 뒤 싼값에 주식을 샀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주가조작 사건에 론스타가 개입됐다고 보고 2007년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를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긴다. 2007년 시작한 이 재판은 2011년 유죄로 결론 났다.

유 대표의 재판 결과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외환은행 주식 매각 승인을 미루던 금융위는 2011년 11월이야 주식매각을 명령한다. 그러나 ‘대주주가 금융관련 법령을 위반해 처벌받은 경우 10%이상 지분을 소유할 수 없다’는 은행법에도 불구하고, 론스타에 외환은행 지분 41%에 대한 강제매각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론스타는 이 은행법 규정에 따른 불이익을 받지 않고 4조7000억원을 받고 하나금융에 외환은행을 넘기게 된다.

한국을 떠났던 론스타는 같은 해 우리 정부를 상대로 6조원대 소송을 제기한다. 금융당국의 승인이 지연돼 외환은행 거래가 늦어져 손해를 봤다는 주장이었다. 이후 10년 간 소송이 이어졌고, ICSID의 론스타 사건 중재판정부는 지난달 31일 우리 정부가 론스타에 3000억원의 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 법조계 “책임소재 명확히 해야”

30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이 지출될 상황이 되자 법조계에서는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은 2일 논평을 내고 “중재판정부는 정부가 위법하게 매각 승인을 지연시켰다고 판단했다”며 “외환은행 매각 시부터 중요한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이 밀실에서 몇몇 논의로 진행되면서 정확한 법률적·절차적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관치금융의 폐해가 지적되고 있는 점과, 금융정책 부문에서는 구체적 대안 제시가 없는 점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변협은 “론스타의 중재 제소 이후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며 “엉성한 대응으로 애초 론스타가 산업자본으로서 외환은행 인수 자격이 없었으며, 따라서 외환은행 인수가 원천 무효에 해당하고, 본 건 중재신청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는 법률적 쟁점을 제기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정부 관료들의 실책과 분쟁 대응 과정에서의 이해충돌이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다”고 짚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는 중재판정부의 결론과 관련, 인수자인 하나은행 측에 이득을 준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송기호 변호사는 “론스타 판정은 국가가 불법에 관여해 하나금융지주가 6000억원의 이득을 봤다는 것이다”며 “하나금융지주에 6000억원을 깎아 외환은행 주식을 사는 이득을 주고 국가에는 손해를 끼친 행위에 배임죄 적용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배임죄 성립시, 책임자의 관여 정도에 따라 특경가법 범죄이익 몰수·추징 조항 적용도 가능하다”며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3000억 국가배상책임 발생시킨 행위자들 및 그 구체적 행위들이 구체적으로 적시된 판정문 공개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했다.

참여연대도 논평을 통해 “대한민국 경제 법질서를 유린하고 농락한 일개 사모펀드의 사기 행각을 묵인하고 사실상 조력해온 금융감독 당국의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며 판정문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했다.

법무부는 론스타 측과 판정문 공개를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론스타 ISDS 사건 중재판정부가 발령한 절차명령 제5호에 따라 당사자인 정부와 론스타가 동의하지 않으면 대외에 판정문을 공개할 수 없다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