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금리 등 변화에 따라 당기순익 변동폭↑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내년 보험사들은 새 회계제도 도입으로 보험부채 평가 방식뿐만 아니라 주식, 채권, 펀드 등 금융자산 분류 방식(IFRS9)도 달라져 긴장감이 고조된다. 무엇보다 주가, 금리 등 거시경제의 변화에 따라 당기순이익의 변동 폭이 커져 실적을 관리하기가 더 까다로워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와 함께 대손충당금 부담이 커져 순익에 영향을 미치는 점도 보험사들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는 관측이다.
◇당기손익금융자산(FVPL) 급증···현대해상 "7조 늘어난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해상은 올해 상반기 회계보고서에서 내년 IFRS9 도입에 따른 예비영향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보험사들은 금융자산에 대한 회계기준이 IFRS9으로 바뀐다. IFRS9은 지난 2018년에 은행, 카드사 등 금융사에 도입됐지만 보험사의 경우 IFRS17 도입 시기까지 적용이 미뤄졌다. IFRS17은 보험사의 부채, IFRS9은 자산과 관련된 회계 기준이라고 보면 된다.
IFRS9이 도입되면 금융자산의 분류 기준이 더 객관적이고 엄격하게 바뀐다. 현재 기준 아래선 보험사들은 지분상품(주식)과 채무상품(채권)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금융자산을 보유하는 목적과 의도, 능력 등 다소 주관적인 분류 기준이 적용됐다. 하지만 IFRS9에선 지분상품과 채무상품을 엄격하게 분류한 다음 채권을 ‘사업모형’과 ‘계약상 현금흐름’이란 객관적인 기준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기준에 의해 보험사의 금융자산은 ‘상각후원가 측정 금융자산(AC)’,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 측정 금융자산(FVOCI)’, ‘당기손익-공정가치 측정 금융자산(FVPL)’ 등 세 가지 범주로 구분된다. 여기서 FVPL와 FVOCI은 시가(공정가치로) 평가되기에 금리, 주가 등에 따라 가치가 계속 변동해 평가이익과 손실이 발생한다. 다만 FVPL에서 나온 평가손익은 당기순이익에 반영되지만 FVOCI는 그렇지 않다는 차이점이 있다. 현행 기준의 ‘당기손익인식금융자산’, ‘매도가능금융자산’과 유사하다.
문제는 IFRS9의 엄격한 기준으로 인해 FVPL이 늘어나 보험사들의 당기순이익이 금리, 주가 등 거시경제 상황에 따라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현행 기준에선 수익증권(펀드)은 매도가능증권으로 분류할 수 있어 펀드의 가치 변화가 당기순익에 반영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IFRS9에선 FVPL로 분류돼 평가손익이 당기순익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현대해상의 예비영향평가도 올해 상반기 기준 약 7조원 규모의 매도가능금융자산이 FVPL로 분류돼 당기순익에 영향을 줄 것으로 파악됐다. 구체적으로 펀드가 5조28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기타유가증권 1조512억원, 채권 7660억원, 출자금 4379억원, 주식 341억원 순으로 FVPL로 분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현대해상은 “계약상 현금흐름이 원금과 원금 잔액에 대한 이자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아 당기손익-공정가치 측정 항목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다”라며 “당기손익 변동성이 다소 증가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평가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삼성생명도 IFRS9 도입 이후 당기순익의 변동 폭이 커질 수 있다고 인정했다.
실제로 IFRS9을 2018년에 이미 도입한 금융지주 계열 보험사들은 당기순익이 큰 폭으로 변동하는 것을 경험했다. 4개의 보험사는 새 제도 도입 후 FVPL은 기존 2.9%에서 25.3%로 대폭 늘었다. 그 결과 4개 보험사 가운데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한 두 곳의 당기순익은 크게 감소했다.
◇대손충당금 증가도 실적에 부담요인
이와 더불어 대손충당금 부담이 커지는 점도 신경써야 할 문제라는 평가다. 대손충당금은 보험사가 고객에게 내준 대출채권이나 보험사가 투자한 채권 중 원리금을 받지 못하는 부분을 예상해 미리 손실로 반영하는 항목이다. 충당금이 늘어나면 당기순익도 그만큼 감소한다.
현행 기준에서 보험사들은 고객이 대출에 대한 원리금 상환을 한 달 이상 밀리거나 투자한 채권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는 등 손실과 관련된 구체적인 증거가 발생해야 대손충당금을 적립했다. 하지만 IFRS9 아래선 미래 경기전망을 반영해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당장 부실채권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경기가 악화되면 충당금을 더 많이 적립해야 한다.
물론 보험사들은 은행처럼 대출채권이 많지 않아 회계 기준이 변해도 충당금이 대폭 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최근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는 경향 속에서 보험사도 대출자산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이에 IFRS9 이후 충당금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보험업계 전문가는 "보험사들은 IFRS9 도입 이후 당기손익 변동성을 관리하기 위해선 장기채를 계속 많이 사들이는 것 외엔 마땅히 관리 방법이 없다"라며 "다만 장기채 비중을 늘리면 투자이익률이 하락한는 딜레마가 발생해 보험사들의 고민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충당금의 경우 우량 차주 위주의 대출채권을 늘려 건전성을 관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