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노선 재정구간 유찰, 개통 지연 우려 커져
콤팩트시티 등 연계 사업 영향 미칠 듯
A·C노선도 개통 목표 줄줄이 연기
윤석열 대통령 지난달 주문한 ‘GTX 속도전’ 무색

/ 그래픽=시사저널e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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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윤석열 정부의 주택 공급 대전제인 ‘선(先)교통·후(後)개발’ 계획이 삐걱거리는 모양새다. 수도권 동서를 연결하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B노선은 재정구간 4개 구간 중 3개 구간이 유찰되며 사업자 선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콤팩트시티 등 연계 사업들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밖에 A노선은 영동대로 지하개발 일정에 발목이 잡혔고, C노선도 착공이 연기되고 있어 정부 계획대로 진행하긴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B노선 재정구간에 대한 유찰 우려가 현실화됐다. 발주처인 국가철도공단가 지난 23일 B노선 용산~상봉 구간 4개 공구 건설공사에 대한 입찰을 진행했지만 3개 공구에서 경쟁 구도가 설립되지 않았다. 4공구(SK에코플랜트·KCC건설)를 제외한 1공구(대우건설)·2공구(DL이앤씨)·3공구(현대건설) 등 세 공구가 단독 입찰해 유찰됐다. 국가철도공단이 이례적으로 입찰 전 공사비를 2000억원 가량 증액했음에도 건설사들이 참여는 저조했다.

GTX-B 노선은 인천대입구역에서 용산역, 청량리역, 상봉역, 마석역 등 인천과 남양주를 관통하는 82.7㎞ 길이 노선이다. 용산역에서 상봉역까지 20㎞ 구간은 재정사업으로 확정됐고, 인천대입구역에서 용산역 40㎞, 상봉역에서 마석역 23㎞ 구간은 수익형 민간투자사업(BTO)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번 입찰은 재정구간으로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 방식으로 건설사를 선정한다. 국가철도공단은 이례적으로 재정구간 입찰 전 공사비를 기존 2조3511억원에서 2조5584억원으로 2072억원 증액했다. 유찰로 인한 국가 주요 사업의 지연을 막기 위해 선제적인 조치였다.

업계에선 이번 사태가 예견된 결과라는 반응이다. 건설업계에선 공사비가 적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올해 토목사업 발주가 몰려 건설사들에게 선택지가 많다는 점도 참여가 저조한 요인으로 꼽힌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증액된 금액을 적용해도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다”며 “시장 상황을 읽지 못한 국토부의 판단 오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대로라면 건설사 부족으로 일부 공구는 일정대로 사업자를 선정하기 어려울 것이다”고 덧붙였다.

재정구간 유찰로 B노선의 개통 일정에도 변수가 생겼다. 정부는 재정구간을 내년 하반기, 민자구간을 내후년 착공하고 2030년 개통하는 게 목표다. 유찰할 경우 다음 공고까지 약 2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이 경우 기본설계 심사와 실시설계, 착공 등에서 연이어 지연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업성 문제로 추가 유찰 가능성도 남아있다. B노선 재정구간이 표류할 땐 민자구간이 정상대로 추진되더라도 반쪽 개통을 면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천에서 용산까지, 용산에서 마석까지만 파행 운영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B노선 연계 사업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표적으로 ‘콤팩트시티’가 있다. 콤팩트시티는 정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주택 공급 확대 방안’ 중 제시된 신규 택지 개발 방식이다. 철도역으로부터 500m~1㎞ 지역에 방사형으로 조성된다. 300m 내엔 고밀도 개발로 복합 쇼핑몰·오피스·복합환승센터, 300~600m는 청년주택, 600m부터 배후지역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는 식이다. 입지 발표 후 교통 계획을 수립하는 기존 신도시와 다르게 입지 선정 시부터 교통 계획과 연계된다. 국토부는 콤팩트시티 개발 방식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3기 신도시 고양 창릉지구와 남양주 왕숙지구에서 시범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B노선 일정이 지체될 경우 3기 신도시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콤팩트시티도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GTX 조기 개통만 바라보던 2기 신도시의 부동산 심리도 더 꺾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른 노선들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A노선은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개발 일정이 늦춰지면서 정부가 목표로 하는 2024년 6월 전구간 개통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C노선은 지역 민원에 발목이 잡혔다. 도봉구간 지상화 추진에 대한 주민 반발이 여전하다. 현재 이와 관련한 감사원의 감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해당 구간을 제외한 실시설계에 착수한 상태다. 내년 하반기 착공이 목표지만 감사 결과에 따라 지하 전용 철로를 신설하는 방향으로 설계가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

GTX 노선 모두 저마다 현안에 맞닥뜨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문한 ‘GTX 속도전’도 무색해진 모양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달 원희룡 국토부 장관에게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A노선은 개통 일자를 최대한 당기라”며 “하루하루 출퇴근에 시달리는 수도권 국민의 절박함을 봤을 때 1~2년 당길 수 있는 건 최대한 당기고 다른 부처가 적극 협조해달라”고 지시했다. 이후 국토부는 ‘GTX 추진단’을 꾸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주택 공급 계획에는 ‘선교통·후개발’이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며 “교통이 핵심인 만큼 GTX와 연계된 부분도 많아 지연될수록 정부의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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