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에 마스터플랜 용역 추진 후 2024년 계획수립 될 듯
원희룡 “규모 큰 만큼 특별법 제정 후 재창조 수준 재정비” 발언에도 실망감 커져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정부가 2027년까지 270만호의 주택 인허가 계획을 수립한 8·16 대책에 1기 신도시 특별법 시행 로드맵이 빠지면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에 대한 정부의 계획이 수차례 바뀌자 밑그림을 그리기도 전에 공약이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는 하루 전인 지난 16일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이하 재초환) 감면과 안전진단 기준 완화를 골자로 한 재건축 규제 완화안을 발표했다. 재초환의 현행 부과기준을 낮추고 안전진단에서는 구조안전성 비중을 현행 50%보다 줄여 정비사업 추진 진입장벽을 낮춘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민간 주도의 주택공급을 확대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준공 30년을 넘긴 아파트가 상당수인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수도권 1기 신도시에 대한 세부 공급 방향은 포함되지 않았다. 공급계획을 세세히 다룬 50여 페이지의 대책계획안에 1기 신도시와 관련된 내용은 단 네 줄에 불과했다. 국토부는 연구용역을 거쳐 도시 재창조 수준의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2024년 중 수립할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1기 신도시는 1989년 개발계획 발표 후 1996년까지 116만여명이 거주하는 매머드급 규모로 조성됐다. 그러나 약 30만호의 주택 연한이 이미 30년에 가까워지며 노후화로 인한 정비사업 욕구가 수년 전부터 커졌다. 다만 평균 용적률이 분당 184%, 일산 169%, 평촌 204%, 산본 205%, 중동 226% 등으로 높은 편이어서 분당과 일산을 제외하면 재건축 추진이 어렵다. 기용적률이 높아 수년 전부터 리모델링이 대안으로 논의되기도 했지만 내력벽 철거 이슈 및 사업성 개선 요구로 정비사업이 속도를 내는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에 올해 초 대선을 앞둔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는 특별법 제정을 통한 1기 신도시 재건축 현실화를 대표 공약 가운데 하나로 내걸었다. 하지만 당선 이후에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각 지역 의견을 수렴한 뒤 연말께 1기 신도시 재건축 마스터플랜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가 지난 4월 돌연 “1기 신도시 재건축을 중장기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공약 번복 논란이 불거지자 인수위는 “당선인 공약은 계획대로 진행 중이며, 조속한 정비사업 추진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두고 처음으로 밝힌 주택 공급계획안에도 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 발주에 대한 설명에 그쳤다. 개발을 위한 밑그림 그리기조차 2년여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1기 신도시는 29만 가구에 이르는 워낙 대규모이기 때문에 개별 정비사업이 아니라 질서있게 개발되도록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 도시 재창조 수준으로 체계적으로 재정비하겠다”고 말했지만 1기 신도시 주민들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분당의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주택공급대책에서 후순위로 밀린 것”이라며 “계획 수립이 2년 뒤에나 나오면 2년 간 추진위는 실질적으로 사업에 착수할 수가 없다. 대선 때 공약을 차기 총선용으로 우려먹을 건가”라며 불만을 제기했다. 올해 1분기만 하더라도 재건축 기대감에 분당 등 1기신도시의 고공행진만 두드러졌는데, 앞으로는 테마 속 진주인지 서서히 공약 실현에서 잊혀지는 건지 아리송하다는 말도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1기 신도시엔 정주인구가 많은 대단지가 몰려 있어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만큼, 재건축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기 신도시는 비슷한 시기에 대량으로 공급된 노후 아파트가 많은 지역이라 재정비는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지역이 갖는 상징성과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굳이 기간을 짧게 잡아 결론을 내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