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이 1년 전부터 경고했지만···이상 거래 총 8.6조원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은행권에서 발생한 ‘수상한’ 외환송금 거래가 8조원이 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당초 문제가 된 신한·우리은행 외에도 다른 은행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위법·부당 행위에 대해선 엄중 조치한다고 밝혔다. 은행은 내부통제가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이유로 또 다시 당국이 최고경영자(CEO)까지 제재할까 긴장하고 있다.
◇가상자산거래소와 연관···자금세탁 가능성
1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국내 은행에서 발생한 이상 외환송금 의심거래 규모는 총 65억4000만달러(약 8조6000억원)인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6월 신한·우리은행으로부터 거액의 이상 외화송금 거래 사실을 보고 받고 현장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약 33억7000만달러(약 4조5000억원)의 이상 거래가 발견됐다. 이에 금감원은 모든 은행에 자체 조사를 지시했고, 추가로 31억5000만달러(4조1000억원)를 확인했다.
확인된 이상 해외송금 거래는 대부분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와 연관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상자산거래소로부터 이체된 자금이 국내 무역법인의 대표이사 등 다수의 개인과 몇 개의 법인을 거쳐 국내 무역법인 계좌로 모인 뒤, 수입 대금 지급 등을 명목으로 해외법인으로 송금되는 구조로 이뤄졌다.
더구나 송금이 이뤄진 법인 가운데 일부는 유령 회사로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타 업체와 대표가 동일하거나 사무실과 일부 직원이 중복되는 경우가 있었으며, 업체 규모에 비해 큰 규모의 송금을 하는 등 업체의 실재성에 의심이 되는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금융권에선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해 환차익을 노린 조직적 범죄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해외에서 구입한 가상자산을 국내 거래소에서 더 비싼 값에 판 뒤, 환치기 세력들이 거래 차익을 실현하기 위해 은행을 통해 해외로 송금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치 프리미엄은 국내 가상화폐 시세가 해외 시세보다 높은 현상을 말한다. 더구나 국내외 ‘검은 돈’이나 북한이 불법 취득한 가상자산이 세탁된 경우 국제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검찰과 국가정보원이 나선 이유다.
◇벼르고 있는 금융당국···CEO제재까지 갈까
은행권의 긴장감은 더욱 커진 분위기다. 이상 외환거래 규모가 더 늘어난 만큼 금감원은 신한·우리은행 외에 다른 은행에도 추가 검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검사결과 확인된 위법‧부당 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법규 및 절차에 따라 엄중 조치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은행권이 걱정하는 대목은 금감원이 또 다시 내부통제를 문제 삼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앞서 당국은 사모펀드 사태의 책임이 부실한 내부통제 때문이라는 이유로 은행장 등 금융사 CEO들에게 징계를 내린 바 있다. 금감원은 일단 문제가 된 외환거래가 발생한 지점에서 외국환거래법과 특정금융정보법을 어긴 사실이 있는지 살펴본다는 입장이다. 외국환거래법에 따라 은행은 외환거래 입증 서류를 제출 받아 확인해야 하며, 거래 당사자 외에 제3자에게 송금이 이뤄지는 경우도 체크해야 한다. 또 특금법은 자금세탁행위가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는 경우 이를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금융권에선 이상 외환거래 규모가 큰 만큼 법률을 어긴 사례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하나은행은 2억5000만달러(약 3200억원)의 이상 외환거래에 대해 관련 법률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바 있다. 이번에 신한·우리은행에서 나온 이상 외환거래만 해도 하나은행의 10배가 넘는다.
더구나 은행 직원이 자금 송금 업체와 결탁한 사실이 나온다면 은행 본점의 부실한 관리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16일 "업체와 유착이 있는 건지 그리고 그 정도의 이상거래가 있었는데 본점에서 왜 몰랐는지 이런 것들은 아마 검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금감원은 이번 사태에 대해 단단히 벼르고 있는 분위기다. 1년 전인 지난해 4월 가상자산의 시세 차익을 노린 해외 송금거래가 늘자 대형 은행 외환 담당자들을 불러 주의를 줬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의 이상 외환거래도 이 때 파악된 것이다.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은 지난달 27일 “(작년 4월) 가상자산과 관련된 거래에서 절차, 법절차, 자금세탁, 특금법 등을 지켜달라고 주문했다”라며 “그럼에도 시장에서 이런 걸 회피하는 거래가 이뤄졌다”라며 은행의 부실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꼬집었다.
금감원이 내부통제 미비에 대해 문제를 삼는다면 CEO 제재도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금감원은 사모펀드 사태에 이어 횡령 사건 등이 발생하자 은행의 내부통제가 부실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보고 이를 바로 잡는데 초점을 맞췄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상 외환거래 규모가 가장 큰 신한·우리은행이 금융당국에 직접 보고한 문제이기에 은행이 관련 절차와 규정을 어겼을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본다"라며 "더구나 은행은 고객으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송금을 해주는 업체일 뿐 자금의 출처를 모두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이번 사안으로 내부통제가 부실하게 이뤄졌다고 지적하긴 어렵다고 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