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시간 정상화하려면 노사 합의 필수
피해와 불편은 소비자 몫···노사 양측 편의만 생각한 무책임한 처사 비판
고령자 등 디지털 금융 서비스 이용 어려운 금융취약계층 배려 부족 지적
업계 "개별은행이 영업시간 자체 조정 불가능···탄력점포 운영 통해 대안 마련할 것"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됐지만 시중은행들의 영업시간은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영업시간으로 원상회복하기 위해서는 노사 협의가 진행돼야 하는데 사측과 노조 모두 영업시간 정상화를 바라지 않는 분위기다. 노조 측은 여전히 10만명대인 확진자 수를 이유로, 사측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협의에 나서지 않고 있다. 피해와 불편은 소비자의 몫이 된 가운데 은행이 사기업이면서 동시에 대국민 서비스라는 공적 책무를 지닌 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노사 양측 모두 자신들의 편의만을 염두해 둔 무책임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4월 18일을 기점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됐지만 시중은행 영업 마감 시간은 아직 오후 3시30분까지다. 거리두기 해제가 4달 가까이 됐지만 다른 어떤 직종과 달리 여전히 소비자들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앞서 금융노사는 코로나 사태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강화되자 협의를 거쳐 오전 9시~오후 4시로 운영됐던 영업점 운영시간을 오전 9시30분~오후 3시30분으로 1시간 단축했다.
이유는 노사 협의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금융노조는 사측과 코로나 방역 지침이 해제되더라도 교섭을 통해서만 영업시간 조정할 수 있다고 합의했다. 현재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논의를 하고 있지만 임금 인상을 두고 양측 간 협의가 지속되면서 영업시간 정상화 안건은 뒷전으로 밀려난 상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양측이 영업시간을 기존대로 원상회복하기보다는 고착화하려는 분위기에 있다.
먼저 금융노조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교섭에서 임금 6.1% 인상과 주 36시간 근무, 영업점 폐쇄 금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금융노조에는 시중은행과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 금융공기업 등의 노조원 10만명이 소속돼 있다.
노조의 요구에 사측이 난색을 보이면서 결국 협상은 결렬됐고 중앙노동위원회 쟁의 조정 합의도 실패해 결국 지난달 26일 '조정 중지'가 결정됐다. 이에 파업권까지 확보한 금융노조는 오는 19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다음달 16일 모든 은행 업무를 중단하는 총파업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코로나 확진자 수가 확 줄어들면 모르겠지만 현재 연일 10만명대가 나오는데 영업시간을 정상화하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노사 안건이 임금 문제에 치중돼 있긴 하지만 업무시간 정상화에 대해서는 사측도 소극적인 자세다. 비대면 금융 서비스가 상당부분 자리잡은 상황에서 굳이 고정비 지출을 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비용 절감 차원에서라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이유다.
양측이 서로 다른 이유지만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는 '이상동몽'의 상황이 지속되면서 기존 영업시간으로 원상회복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 사이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 되고 있다. 특히 고령자의 경우 은행 이용에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디지털 금융 서비스 이용이 어려운 금융취약계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시중은행의 영업시간 단축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지난 2020년 9월 수도권을 중심으로 도입됐다. 정상 영업시간인 오전 9시~오후 4시에서 앞뒤 30분씩, 총 1시간을 단축하는 게 골자다. 이후 2020년 12월 3차 대유행, 2021년 7월 4차 대유행 등 고비마다 적용됐다.
지난해 10월 금융노조는 임금 협상을 진행하면서 '코로나 방역 지침이 해제된 경우 산별 중앙 교섭을 통해서만 영업시간 단축을 조정할 수 있다'는 문항을 합의서에 추가했다.
영업시간 정상화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면서 시중은행들은 일부 영업점에 한해 자체 탄력 점포를 가동하며 운영시간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
가장 적극적인 은행은 KB국민은행이다. KB국민은행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9To6 Bank'를 도입해 일반 영업점보다 영업시간이 긴 특화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9To6 Bank'는 영업점 운영시간을 오후 6시까지 연장 운영하는 형태의 특화지점을 의미한다. 비대면 거래 확산에도 불구하고 자산관리나 대출상담 등 대면채널에 대한 니즈가 높은 금융서비스 부문에서 고객 접점을 넓혀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현재 KB국민은행의 '9To6 Bank'는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은 물론 충청, 대구, 부산, 광주 등 전국 72곳의 영업점에 적용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영업시간 조정은 노사간 협의사항이기 때문에 개별은행이 자체적으로 변경하기 어렵다"며 "고객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은행별로 탄력점포를 운영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영업시간 정상화를 위해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당국도 관련 법령이 없어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