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신축 거래 10건 중 2건, 전세가율 90% 넘어
강제경매, 지난해 동기 대비 70% 급증
전세금반환보증보험 사고액, 역대 최고
“집값 하락 본격화, 깡통주택 늘어날 것”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울 주택 시장에 ‘깡통전세’ 주의보가 켜졌다. 특히 빌라(연립·다세대주택)를 중심으로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이 80%를 넘어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집값이 하락 국면으로 접어든 만큼 전세가율 상승에 따른 임차인 피해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8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살펴보면 올해 1~6월 서울에서 체결된 신축(2021년 이후 준공) 빌라 전세 거래 3858건 가운데 21.1%(815건)의 전세가율이 90%를 넘는 깡통전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전셋값이 매매가와 같거나 더 높은 경우는 절반이 넘는 593건에 달했다. 깡통전세는 전세보증금이 주택 매매가와 비슷하거나 웃도는 매물을 말한다. 통상 부동산 업계에선 전세가율이 80%를 넘으면 깡통전세로 분류한다. 이런 경우 집이 경매에 넘어가도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모두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서울 23개 자치구 중 깡통전세가 가장 많은 곳은 강서구다. 강서구는 전세 거래 694건 중 370건(53.3%)이 깡통전세였다. 특히 대표적인 빌라 밀집 지역인 화곡동에서만 304건 나왔다. 이는 전체의 82.2%를 차지한다. 화곡동은 김포공항과 가까워 고도제한에 묶인 지역으로 10층 내외 빌라가 많다. 집값이 저렴해 1∙2인 가구 주거 수요가 많은 편이다. 이 밖에 양천구(48.7%) 관악구(48%) 구로구(36%) 등도 깡통전세 비율이 서울 평균(21.1%)을 크게 웃돌았다.
이미 시장에선 깡통전세로 인한 피해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빌라의 경우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진행된 강제경매 건수가 가장 많았다. 법원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임차인과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신청한 빌라의 강제경매 신청 건수는 498건이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291건) 대비 70% 확대된 것이다. 같은 기간 아파트의 강제경매 건수가 10%(286건→316건) 가량 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높은 수치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 사고액도 지난달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HUG에 따르면 지난달 사고액은 872억원(421건)으로 집계됐다. 월간 기준 역대 최대 금액인 지난해 12월(742억원∙326건)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전세금반환보증보험은 전세 계약이 끝나도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때 HUG가 대신 임차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고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상품이다.
시장에선 집값 하락세가 본격화되면서 빌라를 중심으로 깡통주택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 연립·다세대주택 매매가격은 0.01% 떨어지며 3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매매가격 변동률은 지난해 10월 0.55%로 정점을 찍은 후 11월 0.48%, 12월 0.25%, 올해 1월 0.03% 등 가파르게 하락했다. 지난 2월(-0.07%) 하락 전환한 뒤 3월(-0.01%), 4월(0.01%), 5월(0.02%), 6월(-0.01%) 등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며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함영진 직방 데이터랩장은 “그동안 아파트 전셋값이 오르고, 월세화에 따른 전세 품귀현상으로 빌라를 찾는 수요가 많았다”며 “하지만 최근 아파트뿐 아니라 빌라 가격도 하락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깡통전세 현상이 나타날 우려가 커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세입자 보호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임대사업자가 등록한 임대주택뿐 아니라 일반 임대주택도 전세금반환보증 가입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빌라는 집값이 쉽게 오르지 않는 특성상 매매보다 전세를 선호해 전세가격이 높게 형성된다”며 “전세가격이 하락하면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능력이 낮아지는 경우가 많아 임차인은 보험 가입으로 전세보증금을 지킬 수 있는 보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