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판관 “모임은 인정, 대가성 없다” 해명···시민사회 “신뢰·공정성 훼손”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이영진 헌법재판관이 사업가에게 식사와 골프 접대를 받았다. 접대자는 이 재판관으로부터 ‘재판에 도움을 주겠다’는 답변을 들었고, 골프 옷과 현금까지 전달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 재판관은 ‘재판 관련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으나, 접대를 받은 사실만으로도 사법부와 재판에 대한 신뢰와 공정성을 훼손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재판관은 지난해 10월 고향 후배 A씨가 마련한 골프 모임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A씨의 고등학교 친구인 사업가 B씨와 이 재판관의 지인인 C변호사 등 4명이 참석했다.
당일 골프 비용 120여만원은 B씨가 모두 결제했고 B씨는 골프를 마친 뒤 자신이 운영하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이 재판관 등에게 돼지 갈비와 와인 등 저녁 식사 대접도 했다고 한다.
부인과 이혼 소송 중이던 B씨는 이 자리에서 이 재판관과 C변호사에게 재산 분할 등에 관해 물었고, 이후 C변호사가 B씨의 이혼 소송 대리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언론을 통해 ‘(이 재판관이) 가정법원에 아는 부장판사가 있다. 도와줄게’라고 말했다고도 주장했다. 또 C변호사에게 현금 500만원과 골프 의류를 보내 이 재판관에게 전해달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 재판관은 이에 골프를 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재판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부인했다. 이 재판관은 “덕담 차원에서 ‘좋은 변호사를 선임해서 소송을 잘하시라’고 했던 정도”라며 “A씨의 근거 없는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해명했다. 골프 옷과 현금은 “전혀 아는 바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재판관이 골프 접대 등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면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참여연대는 “누구보다 청렴하고 독립적이어야 할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고향 후배라는 사적 관계를 연결고리로 처음 본 사업가에게 고액의 향응을 받은 것은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가 분명하다”며 “특히 재판 청탁이 오고 간 의혹이 제기된 것만으로 사실은 헌법재판관과 헌법재판소, 나아가 사법부와 재판에 대한 신뢰와 공정성을 훼손한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소송에 도움을 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현직 헌법재판관 신분으로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잔여 임기를 공정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 심각한 회의를 갖게 한다”며 “신뢰가 훼손된 만큼 스스로 거취를 표명하고 논란을 매듭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은 이 재판관의 사직까지 요구했다. 모임은 성명서를 통해 “헌법재판관은 탄핵 또는 금고이상의 형이 선고되지 않으면 파면되지 않도록 보호받는데, 헌법이 신분을 보장한 만큼 재판관은 그 누구보다도 도덕성과 공정성에 흠결이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도덕적 의무를 저버린 것이 명백한 이 재판관이 헌법재판소 결정에 계속 관여한다면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의문을 가지는 국민들이 생길 것이다”며 “이 재판관 스스로 사직해 이번 사태를 결자해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법관의 도덕성과 공정성에 치명적 흠결을 새긴 건 물론 사법부의 신뢰를 추락시켰다”며 “본인과 사법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즉각 사임하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이 재판관은 지난 3일부터 휴가를 내고 침묵하고 있다. 조만간 거취를 결정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헌법재판소도 이번 사안에 대해 별도의 입장을 발표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