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시세차익 여부 따라 무순위청약 희비
과천·하남, 경쟁률 수백대 1···서울 외각은 수차례 미달
“부동산 침체 속 안전 자산으로 몰려···‘옥석 가리기’ 뚜렷”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부동산 시장이 조정 국면에 들어선 가운데 무순위 청약 이른바 ‘줍줍’에서도 양극화가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최근 과천과 하남에서 공급된 단지들은 1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 기대감에 수요가 몰려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반면 서울 외각 등 입지가 떨어지고 시세차익을 얻기 어려운 단지들은 수차례 미달 사태를 겪고 있다. 청약시장 내 ‘옥석 가리기’ 현상이 뚜렷해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5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전날 진행된 과천자이(과천주공6단지 재건축) 무순위 청약 일반공급 10가구에 7579명이 접수해 평균 경쟁률 757.9 대 1을 기록했다. 최고 경쟁률은 전용면적 45㎡로 1가구 모집에 1832명이 몰렸다. 이 밖에 ▲59㎡A(839 대 1) ▲59㎡A(391대 1) ▲59㎡F(385 대 1) ▲59㎡G(689.7 대 1) 등도 높은 경쟁률을 나타냈다. 이번 무순위 청약은 일반분양 과정에서 위장전입 등 부정청약으로 계약이 취소된 물량이다.
최근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 등으로 매수 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도 수요가 몰린 건 10억원에 가까운 시세차익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전용 84㎡의 경우 분양가가 9억8224만원이다. 해당 면적은 지난 16일 20억5000만원(7층)에 거래됐다. 59㎡ 분양가 역시 8억6267만~9억2052만원으로 현재 호가는 18억원 수준이다. 아울러 실거주 의무가 적용되기 전 분양된 단지라 전셋값으로 잔금을 치를 수 있다는 점도 수요가 몰린 요인으로 꼽힌다. 인근 단지의 전세가격은 8억~12억원으로 분양가와 비슷한 수준에 형성돼 있다.
경기 하남에서도 무순위 청약에 수요가 대거 몰렸다. ‘위례포레자이’ 1가구(전용 131㎡) 모집에 4030명이 도전했다. 실거주 의무(5년)가 있고 하남시에 거주하는 무주택자만 신청할 수 있음에도 시세차익이 10억원 이상으로 예상되면서 많은 청약자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해당 가구의 분양가는 9억2500만원으로 주변 신축 단지 시세(20억원대)의 절반 수준이다. 해당 단지는 이 단지는 지난해 7월 전용 101㎡ 1가구에 대한 무순위 청약에서도 8675명이 신청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두 단지의 청약 경쟁률은 올해 들어 가라앉은 청약 열기를 감안하면 높은 수준이다. 청약 경쟁률은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에서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전국 청약 평균 경쟁률은 2020년 27.9 대 1에서 지난해 19.8 대 1을 기록한 뒤, 올해 들어선 11.7 대 1까지 줄었다. 수도권은 지난해 31.0 대 1에서 올해 13.3 대 1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서울은 164.1 대 1에서 29.8 대 1로 크게 낮아졌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주택 가격에 대한 고점 인식과 금리 인상, 거래 정체, 수요자 관망 등으로 주택시장의 가격 약세 현상이 지속돼 청약시장이 주춤한 상황이다”며 “이런 가운데 청약 경쟁률이 높은 곳은 현재 거래되는 가격의 절반가에 공급이 됐다는 점에서 단기 차익이 크다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물가인상,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분양가 인상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해당 단지에 수요가 몰린 요인으로 풀이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수도권에서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 단지들은 수차례 미달 사태를 겪고 있다. 대부분 입지가 떨어지고 고분양가로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곳들이다. 대표적으로 서울 강북구 수유동 ‘칸타빌수유팰리스’는 올해에만 다섯 번째 무순위 청약을 실시했다. 6월 입주를 시작했음에도 미계약 물량이 나오자 분양가 최대 1억원 할인이라는 초강수까지 뒀지만 주인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북구 미아동 ‘한화 포레나 미아’ 역시 지난달 25일 세 번째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다. 평균 경쟁률이 1.1대 1 수준에 그쳐 네 번째 무순위 청약을 준비 중이다. 단지 전체가 통으로 미계약돼 눈길을 끌었던 경기 성남 ‘이안 모란 센트럴파크’는 지난달 27일 무순위 청약에서 74가구 모집에 신청자는 27명에 불과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시장 분위기가 좋을 때에는 브랜드에 상관없이 소위 ‘묻지마 청약’을 하는 모습도 나타나지만 오름세가 꺾일수록 브랜드에 따른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며 “최근 원가 상승으로 공사가 중단된 현장들까지 나오는 불안한 시장 상황에 소비자들은 보다 안전한 상품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 부동산 시장이 침체됐지만 주요 지역에 대한 대기 수요가 여전히 많은 만큼 상품·입지별 양극화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